
연말을 뜨겁게 달군 지상파 3사의 ‘2019 연예대상’이 모두 막을 내렸다. 이들을 향한 엇갈린 평가 속, 연말 시상식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숙제로 남았다.
지난 21일 ‘2019 KBS 연예대상’을 시작으로 지난 29일 열린 ‘2019 MBC 방송연예대상’에 이르기까지 약 일주일 간 진행된 예능인들의 축제는 세 명(팀)의 대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을 향한 평가는 각양각색이었다. 가장 먼저 연예대상의 포문을 연 KBS는 ‘집안 잔치’라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KBS 연예대상’ 대상의 왕관은 예상대로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의 주역들인 아빠들에게 돌아갔다. 샘 해밍턴, 도경완, 문희준, 홍경민, 박주호 등 ‘슈돌’ 팀이 단체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특히 ‘슈돌’ 팀의 대상 수상은 2011년 이후 8년 만에 팀 단위의 수상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앞서 올해 중순 ‘1박 2일’ 시즌3가 불명예스럽게 제작 중단을 알린 후 KBS 대표 예능으로서 프라임 시간대를 책임져 온 만큼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의 시상이라는 점에서는 공감을 샀지만, 정작 오랜 시간 ‘슈돌’의 중심을 이끄는 공을 세웠던 이동국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으며 그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이동국 가족은 지난 10월 하차하기 전까지 ‘슈돌’에서 약 4년간 활약하며 올해 갑작스러운 편성 변경을 맞이하며 위기를 맞았던 프로그램의 주축을 잡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연말 시상식을 2개월 앞두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며 이날 시상식에는 초대되지 않았고, ‘슈돌’ 팀이 대상의 영광을 안은 순간에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KBS 연예대상’에서는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에 대한 전현무의 태도 논란, 김승현 아버지의 방송사고 급 ‘민폐’ 수상소감, ‘장수 예능’에게 상을 챙겨주는 듯한 ‘집안 잔치’식 시상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적 등 크고 작은 잡음들이 뒤따르며 아쉬움을 남겼다. 마땅히 내세울 ‘대표 예능’이 부재했던 상황 속, 긴장감을 유발하는 대상 경합을 벌일 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는 점 역시 올해 KBS 연말 연예대상의 문제점이었다.

28일 열린 ‘SBS 연예대상’의 대상은 ‘런닝맨’의 유재석에게 돌아갔다. 앞서 시청자들은 ‘SBS 연예대상’ 개최 전부터 유력한 대상 후보로 ‘런닝맨’의 유재석과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백종원을 꼽으며 두 사람의 치열한 2파전을 예상했던 바 있다. 하지만, 변수는 예능인을 본업으로 하지 않는 비연예인 신분인 백종원이 그 동안 대상 수상을 수 차례 고사해왔다는 점이었다. 올해 역시 백종원의 대상 수상이 불발될지에 자연스레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가운데 백종원은 올해 연예대상에서 대상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품격 있는’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날 김병만, 유재석, 이승기, 신동엽, 김구라, 김종국, 서장훈과 함께 이름을 올린 백종원은 대상 후보 인터뷰를 통해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연예대상’은 고생하신 연예인 분들이 받아야 한다. 나는 연예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매번 시상식에 참석 하냐고 하시는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고 속마음을 고백했다.
특히 백종원은 연예대상에 대해 “주셔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단호한 소신을 밝히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최우수 프로그램상을 받고, 신인상(정인선), SBS 챌린저상(김동준), SBS 명예사원상(양세형), 우수상(김희철), 최우수상(김성주) 등을 배출한 가운데, 모두가 인정하는 SBS의 강력한 대상 후보였지만 비연예인으로서 ‘연예대상’을 수상하지 않겠다는 소신이 돋보이는 발언이었다. 대신 백종원은 올해 ‘대상’의 무게를 담은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 올해 많은 분들이 웃음을 드렸는데, 제가 받은 이유는 더 열심히 하라는 뜻 같다”며 “좁게는 SBS, 넓게는 국민 여러분들에게 기운을 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겠다. 골목에서 고생하는 자영업자 분들, 농민, 어민 분들이 기운을 내시고 희망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공감 백배 소감을 전했다.

백종원이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4년 만에 대상을 수상하게 된 유재석은 수상 이후 최근 세상을 떠난 故 설리와 구하라를 언급하며 대상 수상자다운 감동의 소감을 전했다. 먼저 ‘런닝맨’ 팀에 대한 감사함을 전한 유재석은 “‘런닝맨’에 출연하셨던 게스트 분들 가운데 올해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떠난 설리, 구하라 씨가 생각이 많이 난다. 하늘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두 사람을 애도하며 현장에 참석한 이들은 물론, 안방극장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먹먹하게 울렸다.

공로상과 대상 수상을 통해 대중을 납득 시키며 ‘축제’를 완성하는 듯 했던 ‘SBS 연예대상’이었지만, 이날의 진짜 스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탄생했다. 주인공은 김구라였다. 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김구라는 대상 후보 인터뷰에서 “제가 납득이 안 되는데 시청자들이 납득이 될까 걱정”이라며 “구색 맞추려고 (대상 후보를) 8명 넣은 것 같다”는 거침없는 소신 발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그는 “‘연예대상’도 물갈이를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KBS도 ‘연예대상’ 시청률 안 나왔다. 5년, 10년 된 국민 프로그램이 많다 보니 돌려 막기 식으로 상을 받고 있다. 대상 후보 8명 뽑아놓고 아무런 콘텐츠 없이 개인기로 1~2시간 보내는 것 더 이상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통합해서 지상파 3사 본부장들끼리 만나서 돌아가면서 해야 한다. 광고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 같은데, 이제 바뀔 때가 됐다”고 고질적인 연말 시상식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낸 김구라의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은 방송 직후 큰 화제를 모았고, 그는 이날 시상식의 ‘MVP’로 떠오르며 이튿날까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SBS 연예대상’ MC였던 김성주와 박나래가 시상식 진행을 위해 김구라를 말리거나 한숨을 쉬었다는 이유로 뜻밖의 태도 논란에 휩싸이는 홍역을 치르며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을 낳았다.


단번에 ‘연말 시상식의 남자’로 떠오른 김구라의 행보는 다음 날 열린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역시 대상후보에 이름을 올린 김구라는 인터뷰 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더라”며 전날 ‘SBS 연예대상’ 발언 이후 자신에게 쏠린 이목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어제 상은 유재석 씨가 받았는데 검색어에 제가 오르는 기현상이 일어나서 죄송하기도 했다. (SBS) ‘연예대상’에서 제가 과장된 퍼포먼스를 했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 이후에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는데, 특히 PD 분들이 연락을 많이 주셨다. 자기가 본부장이 되면 개혁적인 조치를 취해서 시상식을 없애보겠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본부장이 될 감이 아니다”라고 농담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또 김구라는 전날 자신의 발언 이후 뜻밖의 논란에 휩싸인 김성주와 박나래에 대한 해명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 김성주 씨를 만났는데 어제 제가 과장된 퍼포먼스를 하는 와중에 자기랑 박나래만 욕먹고 있다고 하더라. 두 분은 제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데 예능적인 퍼포먼스를 해준 거다. 시청자 분들도 그런 걸 알고 계시니 박나래 씨도 너무 괘념치 마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나래는 김구라의 이야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감동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 훈훈함을 자아냈다.
‘팩트 폭격기’로 변신한 김구라의 활약이 이틀째 이어지며 연말 연예대상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올해 ‘MBC 방송연예대상’의 대상은 3년 만에 수상에 성공한 박나래에게 돌아갔다.

지난 2017년부터 2년째 대상 후보에 올랐지만 매번 아쉽게 고배를 마셔야 했던 박나래는 3년 만에 대상 트로피의 주인이 됐다. 올해 역시 하반기 ‘유산슬’ 신드롬을 탄생시킨 유재석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며 대상 수상 여부에 초미의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MBC는 박나래의 공을 인정했다. 시청자들 역시 박나래의 수상에 공감했고, 눈물의 수상 소감을 전한 박나래의 모습에 응원을 보냈다.

박나래에게 대상을 양보한 유재석은 ‘부캐(부캐릭터)’인 ‘유산슬’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연말 시상식에 웃음을 더했다. 여기에 유재석은 ‘유산슬’의 타이틀곡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로 신나는 특별 무대를 꾸미며 대상 수상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 외에도 방송사 대통합을 이뤄낸 ‘대세’ 펭수의 시상자 등장, 안영미-홍현희-김숙 등의 ‘감동과 눈물의 수상소감’도 시선을 사로잡으며 시상식에 재미와 의미를 더했다.
올해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 가운데 예능인들의 ‘축제’로서의 의미를 가장 완벽하게 살려낸 연말 시상식은 단연 MBC였다.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상자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응원을 담은 트로피를 전함과 동시에 올 한해 MBC를 빛낸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특별 무대들로 모두가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낸 덕분이었다.
올해 ‘연예대상’ MVP로 남은 김구라의 ‘사이다 일침’이 남긴 교훈도 그러하듯, 이미 오랜 시간 거듭돼 오며 과거를 답습하기에 급급해진 ‘연말 시상식’들이 이제는 차별점 마련을 위한 탈출구를 고민해야 할 때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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