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지만 좀처럼 새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대와 희망, 다짐을 함께 나누는 새로운 시작에 가슴이 뛰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 겪은 대립과 갈등, 분열의 골이 크고 깊어서일 것이다. 해가 바뀌기 전에 매듭짓고 해결했어야 할 국가적 과제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 우리 앞에 닥칠 도전과 위협의 강도가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인데 국가적 역량 결집은 고사하고 아귀다툼으로 점철되고 있는 현실 탓일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계속된 적폐청산에 정치적 피아(彼我)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조국 사태’는 사회 갈등을 대결로 치닫게 했다. 그 중심에 집토끼만 쳐다보는 정치가 있었다. 2년여가 넘는 적폐청산과 여야 간 대화ᆞ협상의 실종은 협치는 고사하고 대결적 쟁투만 난무하게 했다. 의사당은 외면하고 강경 대응만 고집한 제1 야당도 문제지만 그들을 포용 못하고 독주한 여권 책임이 더 크다. 그 뒤엔 문재인 대통령의 강고한 리더십이 있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21대 총선, 인적쇄신 통해 구태 정치와 결별해야
새해에는 21대 총선이 치러진다. 향후 4년의 국가 운명을 좌우할 중대 정치 일정이다. 하지만 적대적 분위기만 넘쳐난다. 이러다 총선이 지난해보다 더 극심한 대립과 분열의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선거전이 죽기 살기 식으로 흐르면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이 어렵고 그 후유증도 감내하기 어렵다. 정치권은 이를 사전 차단하고 대립과 분열을 막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21대 총선은 낡은 정치 청산의 대전환점이 돼야 한다. 철저한 인적 쇄신이 그 출발점이다. 갈등과 대결이 아닌 화해와 통합을 이룰 새 인물의 수혈로 과거 정치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 아직도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수구적ᆞ극우적 사고에 젖어 있거나, 자신들만 선(善)이라는 운동권적 인식에 집착하며 대화와 타협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은 걸러내야 한다. 대신 변화와 혁신의 시대 흐름을 선도할 이들이 새 정치 판을 만들어 의회민주주의를 복원케 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정치의 복원은 우리에게 밀어닥칠 대내외적 도전과 위기 때문에 더 절실하다. 작금의 북미 관계는 평창동계올림픽 이전으로의 회귀 가능성이 점쳐질 만큼 위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로운 길’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서 비핵화에 대한 신뢰의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건 더 큰 위협이다. 올해 재선 도전에 나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월 경선 레이스를 시작하면 북의 비핵화 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경제 위기와 안보 정세 대응에 모든 역량 집중을
그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한반도 정세 개입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 북중러 연합 전선 구축에 대응할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은 한일 관계 악화로 여전히 유동적이다. 한일 정상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합의한건 다행이지만 관계 정상화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 중일 간 밀착이 미칠 영향에도 주목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확정된 만큼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사드ᆞ한한령 등으로 서먹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긴요하다.
여기에 경제 위기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지난해 정부는 미중 무역전쟁 등 악화한 대외 여건 대응, 국내 제조업 구조조정, 취약계층 일자리 만들기, 사회 안전망 확충 등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 부문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2017년 70% 후반에서 지난해 25%로 급격히 떨어졌다. 생산 투자 소비 고용 등 민간 영역 전 분야에서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여파로, 한계를 드러낸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였다.
올해도 실패가 되풀이되면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에 더 이상의 경제 회복은 기대하기 힘들다. 확장적 재정 정책은 불가피하지만 새해에는 정부가 어느 때보다 민간 부문 활력 높이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방향은 이미 잡혀 있다. 아직도 가시적 결과가 없는 신성장동력 발굴 육성에 힘을 쏟고, 제조업 분야의 구조조정과 스마트팩토리 등 첨단화 추진, 서비스산업 경쟁력 제고 등이 그것이다. 정부는 새것을 찾기보다 기존 정책의 내실화와 성과 창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文 대통령, 국정운영ᆞ인재등용 방식 개선해야
더불어 정부는 정치권과 협력해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낡은 규제의 보호를 받으며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의 손을 놓고 과학ᆞ기술의 변화에 혁신으로 화답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제조업 살리기와 서비스 분야 생산성 향상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는 만큼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위한 노사 간 합의를 적극 중재하는 게 필요하다. 주택시장의 안정세를 계속 유지하고 주거 안정을 이루는 것도 정부 몫이다.
궁극적으로는 국정을 통할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 막중하다. 올해는 집권 4년 차인 문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다. 국정운영 스타일과 인재등용 방식을 돌아보며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한다. 조국 사태와 청와대 감찰 무마ᆞ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좁은 인재풀과 친문 위주의 ‘끼리끼리 문화’로는 더 이상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의 해인 만큼 각 분야에서 가시적 정책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문가 중심의 중립 내각 구성을 고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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