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공작 사건인 ‘워터게이트’ 보도로 방송계 최고 권위 ‘피버디상’을 받았던 변호사 출신 기자 프레드 그레이엄이 88세 나이로 숨졌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애썼던 원로 법조기자의 죽음에 미 언론은 이례적으로 부고 기사를 내며 그를 추모했다. ‘조국 사태’ 보도 등 진영과 이념 논리에 갇혀 신뢰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우리 언론 상황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AP통신은 지난 30일(현지시간) 그레이엄이 28일 워싱턴 자택에서 파킨슨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처음 고용한 변호사 출신 기자이다. 1965년부터 7년 간 NYT에서 대법원 등을 취재했고, 이후 CBS방송과 법원TV에서 앵커로 활약하는 등 2008년 은퇴할 때까지 법조기자 외길을 걸었다.
그레이엄은 미 형사재판 방송보도의 선구자로 꼽힌다. ‘정확성’과 ‘투명성’을 원칙 삼아 시청자들이 사건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통신은 “법정 안까지 TV카메라가 설치될 수 있었던 건 그레이엄의 노력 덕분”이라고 평했다. 1990년대 초 형사재판을 생중계할 수 있게 되면서 출범한 케이블TV채널 법원TV 첫 앵커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방송계 아카데미상인 에미상도 세 차례나 수상했다.
명성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레이엄은 언론 자유를 위해서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언론 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의 공동 창립자로서 은퇴하는 날까지 동료 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스테판 애들러 위원회 의장은 “그레이엄은 법조기자들에게 필요한 법적 지원을 해주는 우리 조직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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