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리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열의 아홉은 화투놀이를 말한다. 더러는 고등어의 새끼를 떠올리지만, 보물 제46호인 고도리 유적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있듯이 고도리 유적에 담긴 사연을 알고 나면 이즈음부터 그들이 궁금해질 것이다.
고도리 유적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고도리에 위치하여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란 명칭을 갖게 된 한 쌍의 석상이다. 이는 고려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자 형상의 석상엔 수염이 조각되어 있어 남녀 구분이 확연하다. 약 200m가량 떨어진 채 서로 바라만 보다가 섣달 그믐날이 되면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고 새벽녘 첫닭이 울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전설을 지닌 유적이다. 지척에 두고 떨어져 있어서인지 그 심정이 새겨진 얼굴엔 어렴풋한 미소만 묵묵히 머금고 있다.
우리 선조는 여러 물상에 그 마음을 담아낸 솜씨가 뛰어나다. 얼마 전, 경북 경산 도로현장에서 발굴된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도 그렇다. 대략 5세기 전후의 유물로 추정되는 토기는 무표정한 모습과 말하는 모습 그리고 심각한 모습으로 각기 다른 표정을 삼면에 지니고 있다. 마치 이모티콘 같은 그 모습이 공개되자 ‘지금 봐도 세련되었다. 아는 누굴 닮았다. 관련 상품을 만들어라’ 등등의 화제를 낳았다. 만약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땅속에 묻힌 그 정겨운 얼굴을 영영 못 볼 뻔했다.
어찌 그 모습뿐이랴. 전 국토가 박물관인 우리 주변에는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묻혀 있는 문화유산들이 많다. 게다가 굴곡진 역사 안에서 마음 아프게 잃어버린 안타까운 유물도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환수되지 못한 채 떠도는 선조들의 흔적을 만날 때마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고,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불타는 과정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기도 했다.
어처구니없게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으로 인해, 문화재 관리와 복원의 현주소를 되돌아보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냐’란 말도 있었지만, 문화재 관리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문화재 방재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복원되는 과정 중 특히 단청에 많은 논란이 일자, 오랜 연구 끝에 일본산 아교 대신 전통단청에 쓰였던 아교를 복원하여 전승 체계를 마련했다. 여러 복원의 현장에서 옛 모습을 오롯이 찾아내는 연구자들과 지극한 장인들의 손길이 고맙다.
숭례문이 원래 있던 제자리에 복원이 된 경우라면, 한양도성 4대문 중 서대문인 돈의문은 첨단기술로 구현이 된 사례이다. 일제강점기 도로를 내면서 철거된 돈의문은 민관의 협력으로 104년 만에 디지털로 복원이 되었다. 돈의문은 현실적으로 복원이 되기 힘들었다. 도로 한복판에 자리 잡았던 돈의문을 복원하려면 과다한 예산이 들고 엄청난 교통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로 문화재를 복원 활용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키오스크와 모바일 앱으로 드러나는 가상현실 속 모습을 보며 “와~차가 다니는 저 길에 서대문이 있었군요”라는 감탄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디지털과의 융합으로 실물복원이 어려운 유산을 소환하여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더욱이 아름답고 품격 있는 궁의 공간과 다양한 이야기에 기술이 접목되면 문화재 야행과 궁중문화축전도 한층 매력이 더해지게 될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섣달 그믐날이 되면, 화투판의 고도리 대신 고도리 남녀석상을 떠올리며 특별한 순간을 증강현실로 체험하면 좋겠다. 문화유산과 얽힌 상상의 나래를 펴며 2020년 1조 예산의 시대를 연 문화재청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 쓰임이 우리나라 곳곳에 닿아, 자원을 발굴하고 보호하며 방치된 문화유산을 다독여 지역의 자산이 되어 모든 국민이 자긍심을 갖고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지금 우리의 시간도 미래의 문화유산임을 명심하고 함께해야 할 것이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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