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왜곡된 이야기가 사실보다 더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음 직한 원효의 해골물 이야기.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의 유학길에 오른 상황에서 하루는 동굴에 묵게 된다. 한밤중 갈증을 느껴 주변을 더듬다 바가지에 든 물을 마신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그것은 해골에 든 물이었고, 원효는 심한 구역질을 한다. 이때 불현듯 마음먹기에 따라 지난 밤에는 시원한 물이었던 것이, 오늘은 구역질을 하는 역한 물이 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원효는 비위가 약했구나!’였다. 나라면 다음 날에는 구역질이 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효는 비위가 약해서 깨달음을 얻었는가 보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효는 해골 물을 마신 일 자체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을 위해, 요즘으로 치면 다량의 MSG를 첨가한 버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사실은 무엇일까? ‘송고승전’ 권4 ‘의상전’에 따르면, 원효와 의상은 해가 져 갑자기 노숙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굴에 묵게 된다. 그날은 편안히 잠을 잤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인골이 흐트러져 있는 무덤이었다. 이런 상황을 인지한 후 하루 더 자게 되니, 그날 밤에는 귀신 꿈에 극도로 시달리게 된다. 이로 인해 ‘마음이 인식 대상을 결정할 뿐’이라는 일체유심조를 깨닫는다. 원효는 이때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감분불이(心滅則龕墳不二)” 즉 “마음이 생기면 일체의 현상이 나타나고, 마음이 고요하면 동굴과 무덤은 다르지 않네”라는 각성의 시를 읊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 의문, 인간이 과연 동굴과 무덤을 착각할 수 있을까? 즉 봉분이 갈라졌다손 치더라도 이를 무덤으로 오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이는 무덤을 쓰는 방식의 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같은 부여계다. 주지하다시피,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남하하여 건설한 왕국이 백제이지 않은가! 이 때문에 신라의 묘제인 적석목곽분과 달리 고구려와 백제는 횡혈식 무덤을 사용한다. 횡혈식 무덤은 굴식돌방무덤이라고도 하는데, 부여의 송산리 고분을 생각하면 된다.
굴식돌방무덤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돌을 사용해 입구를 동굴처럼 축조하는 무덤이다. 즉 식방처럼 생긴 터널형 입구를 갖추고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 때문에 무덤의 앞쪽이 무너지면 동굴 같은 단면이 노출된다. 원효의 착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즉 무덤 하면 으레 떠오르는 봉분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존재했던 셈이다.
묘제가 바뀌면서, 삼국시대에는 쉽게 이해되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청자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사건의 핵심은 무덤에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골이 변화된 해골 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이야기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한 의도적인 왜곡이다. 또 해골 물의 변화에는 좀 더 드라마틱한 극적인 반전이 존재한다. 때문에 이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인간은 때론 사실을 넘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는 한다. 자료가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해골물 이야기가 일반화되는 상황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이런 점에서도 일체유심조는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이 현상에 치중해 있다면, 사실은 본질이다. 이런 점에서 양자의 고른 균형은 무척 중요하다. 특히 대개의 이야기들은 사실보다는 스토리텔링의 영향이 강하며, 때론 이것이 역사를 강하게 잠식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