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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서 인내해봐야 동상 걸릴 뿐” … 한국 젊은이의 ‘웃픈’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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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서 인내해봐야 동상 걸릴 뿐” … 한국 젊은이의 ‘웃픈’ 초상

입력
2020.01.05 15:15
수정
2020.01.05 18:5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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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술관 ‘시간을 보다’전 … 작가들의 발랄한 접근

정재호, 남자들, 2017, 한지에 아크릴, 80 x 120cm
정재호, 남자들, 2017, 한지에 아크릴, 80 x 120cm

‘시간’은 미술의 오랜 숙제 중 하나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대상을 눈 앞에 그려내 보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특정한 형상이 없기에 오히려 어떤 형태로든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은, 미술 소재로서 시간이 갖는 분명한 매력이다.

볼 수 없는 시간을 보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모였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표현해낸 작가 17명의 작품 80여점이다. 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3월 1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엔 ‘시간을 보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회화와 판화를 비롯해 사진, 영상, 설치 미술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작가가 포착한 시간을 선보인다.

구본창, Soap 28_2007_39x32cm_아카이벌 프린트
구본창, Soap 28_2007_39x32cm_아카이벌 프린트
구본창, Soap 30_2007_39x32cm_아카이벌 프린트
구본창, Soap 30_2007_39x32cm_아카이벌 프린트

구본창 작가는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비누의 순간들을 모았다. 시간 자체를 그리긴 어렵지만, 시간이 닿은 흔적을 기록할 순 있다. 오래 써서 말라 비틀어지고 쪼개진 비누의 표면엔 온갖 생활의 역사가 서려있다. 이 작품이 ‘순간의 박제’라는 첫 번째 전시 구간을 장식하는 이유기도 하다. “비누는 물질적으로도 소멸하지만, 그 전에 갈아치워지니 존재론적으로도 소멸한다”는 게 작품에 붙은 설명이다. 용도를 다해가는 존재의 단면을 포착하는 데에 이보다 적합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임윤경, 프로파일 02-07, 2007, 혼합매체
임윤경, 프로파일 02-07, 2007, 혼합매체

그런가 하면 시간의 흐름을 축적하고 그 움직임을 표현해낸 작품들도 있다. 두 번째 전시 구간인 ‘시간의 궤적’에서다. 임윤경 작가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발행된 패션지 여성 모델들의 ‘옆얼굴(profile)’을 수집하고 그 형태를 그래프 위 라인으로 그렸다. 중요한 점은 작가 자신의 옆얼굴 라인도 함께 겹쳐 그렸다는 것이다. 서구권 모델들의 빨간 라인과 한국인 작가의 검은 라인은 꾸준한 간극을 유지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의 잡지모델들을 새롭게 수집했다. 그 사이 빨간 줄과 검은 줄 사이의 거리가 현저히 줄어든 잡지도 있다. “한국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지만 같은 동아시아계 모델들에겐 인색했던” 유명 패션지들 역시, 시간의 궤적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건지 내심 기대하게끔 한다.

박승원, 검은발, 2019, 7분30초, 단채널 비디오
박승원, 검은발, 2019, 7분30초, 단채널 비디오

마지막 전시 구간인 ‘수행의 시간’에서 시간은 그 자체로 작품의 재료가 된다. 그 중에서도 박승원 작가는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넣은 영상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품 ‘검은 발’ 속 그는 추운 겨울 하얀 눈밭에 자신의 발을 파묻는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수행의 시간’을 견딘다. 그러나 작가가 설명하듯 “눈 내린 땅 위에서 인내해봐야 남는 것은 동상에 걸린 발가락뿐”이다. 절박하지만 공허한 이 퍼포먼스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초상”과 겹쳐져 ‘웃픈(웃기지만 슬픈)’ 감상을 남긴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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