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크리스마스 '모자의 난'을 벌였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공동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간 싸움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간 향후 경영권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치열한 물밑 싸움이 예상된다.
30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이명희 고문과 조원태 회장은 이날 사과문을 내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집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 25일 서울 평창동 이 고문 자택에서 가족 모임을 갖던 도 중 언성을 높이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집기와 유리창이 깨지고, 이 고문은 팔에 상처를 입었다. 분란의 원인은 지난 23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법무법인 원을 통해 조 회장을 ‘저격’한 이후, 경영권에 대한 가족 간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사과문에 따르면 조 회장은 어머니인 이 고문에게 깊이 사죄했고, 이 고문은 이를 수용했다. 이 둘은 사과문에서 “저희 모자는 앞으로도 가족간의 화합을 통해 고 조양호 회장님의 유훈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고 말했다.
이번 사과문으로 가족간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을 짓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원태 회장 임기가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종료되는 만큼, 표대결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현재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28.94%다. 한진가 3남매 지분율은 조 회장 6.52%, 조 전 부사장 6.49%, 조 전무 6.47% 등으로 비슷하다. 모친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5.31%를 보유하고 있다. 2대 주주인 그레이스홀딩스(KCGI)의 지분율은 17.29%다. 델타항공과 대호개발은 각각 10%, 6.28%를 확보하고 있다.
현재 경쟁 구도가 정해진 곳은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이다. 두 사람은 보유 지분이 비슷하기 때문에, 우호지분에 따라 표 대결 승패가 갈리게 된다. 우선 조 회장은 막내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를 우군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경영에 조기 복귀 시켰고, 현재 그룹 업무를 함께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가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조 전무는 아직 어느 편에 설지 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은 한배를 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두 사람 모두 조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기업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될 때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함께 법무법인을 찾아 법적 대응을 모색해왔다. 조 전 부사장과 이 전 이사장 소유의 지분율은 모두 11.8%다. 하지만 이 전 이사장의 우호지분으로 알려진 대호개발(6.28%) 지분율을 합치면 18.08%까지 늘어난다.
이목은 결국 ‘캐스팅보트’ 역할에 쏠리고 있다. 우선 델타항공은 조 회장 측 우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한진칼 지분 4.3%를 추가 매입하면서 조 회장의 ‘백기사’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조 회장이 조 전무 섭외를 마치고, 델타항공과 손을 잡으면 지분율은 22.99%가 된다. 이 경우엔 조 전부사장과 이 전 이사장, 대호개발을 합친 것보다 많다.
하지만 역시 최대 변수는 한진그룹 경영권을 노렸던 KCGI다. KCGI가 조 전 부사장 및 이 전 이사장과 함께하면 지분율은 35.37%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 경우, 경영권은 조 전 부사장 측으로 넘어가게 된다. 반면 KCGI가 조 회장 측 손을 잡으면 지분율이 30.28%가 되기 때문에, 완벽한 승리를 위해선 또 다른 캐스팅보트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경영권 다툼보다 경영정상화가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진그룹의 주력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 항공운송업이다. 최근 항공업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점쳐진 대한항공은 내년엔 적자전환될 가능성도 크다. 진에어는 올해 13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고, 내년 적자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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