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 기준도 없는데 가상화폐에 소득세 부과
내년 세법 개정… 내국인에도 과세 가능성 거론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한 과세 기준이 국내에 아직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세청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800억원대 세금을 부과했다. 과세 당국은 현행 세법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가상화폐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빗썸은 이번 과세에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다.
29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빗썸의 최대 주주인 빗썸홀딩스 지분을 보유한 주주사 `비덴트`는 최근 공시를 통해 “빗썸코리아가 국세청으로부터 외국인 고객의 소득세 원천징수와 관련해 803억원(지방세 포함) 상당의 세금을 부과 받은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빗썸을 통해 가상화폐를 거래한 외국인들의 소득에 대해 국세청이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 했다는 뜻이다.
국세청의 이번 세금 부과에 빗썸 등 가상화폐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내년 세법 개정을 통해 가상화폐 거래 소득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는 했지만, 아직은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세금을 부과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빗썸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무리한 과세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전했다.
국세청은 이번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외국인이 가상화폐를 거래해 얻은 소득에 대해 거래소 역할을 한 빗썸이 그 소득세를 원천징수 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또 외국인 소득세를 ‘양도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도소득세의 경우, 외국인이 초기에 투자한 금액이 얼마이고 이를 통해 얼마의 이득을 얻었는지를 일일이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초기 가상화폐 시장의 익명성 때문에 이를 파악하기 어려워 외국인이 나중에 출금한 금액 전체를 `기타소득`으로 잡고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기타소득세를 적용했을 경우 원천징수 세율은 22%에 달한다.
정부는 가상화폐를 통해 얻은 차익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수준이 될 지는 아직 짐작하기 어렵다.
가상화폐 업계는 거래소별 시세가 다르고 거래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가상화폐 거래의 특성상, 정부가 가상화폐 소득에 양도소득세가 아닌 기타소득세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이번 과세를 계기로 가상화폐 거래소를 이용한 내국인에게도 조만간 비슷한 방식의 과세가 이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한편에선 내년 세법 개정안에 명확한 과세 기준이 명시될 때까지는 내국인 과세가 미뤄질 거란 전망도 있다.
과세당국은 이런 업계의 논란에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국세청이 법적 근거 없이 과세했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불편한 시각을 드러냈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득세 원천징수는 개인의 과세정보여서 세금부과 항목과 세율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이번 과세는 기존 법에 따라 부과된 것으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세종=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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