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장애인 수검률 69%로 낮아, 기기 접근 어렵고 인식 낮은 탓
‘전국 16곳’ 장애인 검진기관조차 시각장애인에 “저쪽” 손짓 안내
“검진하러 갔는데 탈의실 입구가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요. 제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얘기도 안 통해요.”(뇌병변장애인 A씨ㆍ44세)
“정부가 ‘장애인친화검진기관’을 지정했어요.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에 경사로가 있다고 해서 장애인 친화적인 건 아닙니다. 시각장애인이 ‘피검사 하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데 ‘저쪽으로 가세요’ 하고 가리켜요. 저기가 어딘지 어떻게 알겠습니까.”(장애인단체 실무자 B씨ㆍ53세)
정부가 1995년부터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건강검진을 시행해 오고 있지만, 장애인의 건강검진 수검률은 일반인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건강검진 기관과 의료진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낮고 엑스레이 등 검진 기기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2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장애인의 건강검진 수검률은 69%로, 전체 건강검진 수검률(77%)보다 크게 낮았다. 장애인 수검률은 2015년 69.3%, 2016년 70.9%, 2017년 71.0%로 오히려 떨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건보공단은 한국리서치에 의뢰, 지난달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 유관 시설이나 단체 종사자 등 총 11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를 실시하고, ‘장애인 건강검진율 향상 방안 모색을 위한 심층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조사결과 장애인 중 비취업자나 학생은 건강검진 자체를 모르거나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또한 직장이 있어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하더라도 불편했던 경험 때문에 검진받기를 매우 꺼리는 경향을 보였다. 의료진이나 직원이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어 불친절하거나 심지어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잦고, 아예 장애인은 사용할 수도 없는 검진 기기도 많기 때문이다. 또 지병이 있어 정기적으로 병원에 내원하는 장애인의 경우 피검사 등 주요 검사를 단골병원에서 시행하고 있어 굳이 불편을 겪으며 국가건강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지체장애인 C씨는 “이건 할 수 없으니 ‘패스하자’고 하는 게 많다”며 “엑스레이는 휠체어 타고 찍을 수 없으니 패스, 청력 검사도 방음 박스에 들어갈 수 없으니 패스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단체 실무자 D씨는 “여성장애인 중에 유방암 검사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향은 정부가 지정한 장애인 친화 검진기관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의사소통이나 이동편의를 지원할 수 있는 인력 1명 이상을 배치하고 장애인 전용 시설과 기기를 갖춘 검진 기관을 대상으로 전국에 16곳을 지정했다. 이곳에선 휠체어를 탄 채 엑스레이 촬영도 할 수 있지만, 절대적인 수가 부족할 뿐 아니라 이들 기관에서조차 의료진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저기로 가라’는 식의 안내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척수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 장애의 유형에 따라 안내나 검진하는 방법이 다르게 제공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 내용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단순히 일반 검진기관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방식으로는 장애인 수검률을 높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희원 건보공단 급여제도연구부장(보건학 박사)은 장애인 건강검진 주치의제를 제안했다. 장애인이 처음 지자체에 등록할 때 건강검진 주치의를 정하도록 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부장은 “장애인 주치의 도입 시 해당 장애인의 장애ㆍ병력을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할 수 있고 신뢰 관계를 형성하며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검사를 집중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방의학 전문의인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은 지병이 있는 경우가 많은 장애인의 특성상 단골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이를 국가건강검진으로 갈음하면 수검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단골병원에 없는 장비 등이 필요할 경우는 지역 보건소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 대안이라고 밝혔다. 보건소는 휠체어나 점자 안내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줬고 공공복무요원이 있어 활동 지원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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