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에 방문한 수도권의 한 주민센터는 쏟아지는 민원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매일 2~3곳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을 방문해야 할 직원도 민원 전화를 받느라 일정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20~30여분이 소요되는 민원 전화 한 통화가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내용의 전화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주민센터가 전화 공세에 시달리게 된 것은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가 화근이었다.직원 A씨가 센터에 들어온 3만여개의 마스크를 주민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30개씩 봉투에 담아 분류하는 업무를 공익요원 B씨에게 시키는 과정에서 불화가 생긴 것이다. 둘 사이의 갈등은 A씨가 “공익요원이 일을 안 해서 힘들다”는 내용으로 온라인에 익명의 글을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A씨의 하소연에 이어 B씨가 공익근무요원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반박글을 올리면서 바야흐로 ‘마스크 공익’ 사건으로 비화했다.
온라인에서 A씨는 갑질하는 공무원의 상징적 존재로 공격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을 괴롭혀야 A씨가 괴로워 한다’면서 신상털기가 시작됐고 네티즌들은 성차별적 모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 A씨는 자신이 올린 글을 삭제하고“경솔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리라 미리 생각하지 못한 점 죄송하다”는 사과문까지 올렸다. B씨가 A씨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둘 사이의 오해와 갈등은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정도로 끝났다면 네티즌이 직장 동료 간의 불화를 중재한 훈훈한 미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참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A씨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B씨의 자제요청도 소용이 없었다. 공무원의 갑질문화를 근절하겠다는 네티즌들의 선의는 온데 간데 없이 여성인 A씨에 대한 적의만 가득했다.네티즌들이 사용한 참교육이라는 단어는 응징의 적의를 감추기 위한 포장에 불과했다.
공직사회의 부조리와 비리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필요하다면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제어 기능이 부족한 온라인상에선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온라인이 공적 기능을 수행하려면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돼야 한다. 개인에 대한 무차별적 응징은 절차상 하자를 넘어 폭력이 될 수 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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