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갑질’ 논란 확산되며 주목…공공기관서도 ‘업무 비효율’ 난색
병역의무라지만 군사적 업무 아냐…국제노동기구 “강제노동” 지적도
최근 공무원들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공익근무요원(사회복무요원)들의 주장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면서 공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들과 민원인들 입장에서도 사회복무요원들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한데요.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폐지해달라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죠.
◆방위→공익근무요원→사회복무요원으로
사회복무요원은 국방의 의무를 위한 병역판정신체검사에서 신체적ㆍ정신적 질병 등으로 4등급 이하를 받거나 고교 중도퇴학 이하 학력으로 보충역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체복무의 한 형태입니다. 24개월간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및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문화 △환경안전 등의 사회서비스 및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이 제도는 1995년 전신인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면서 시행됐는데요. 첫 도입 당시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불렸지만 2013년부터 명칭이 ‘사회복무요원’으로 확정됐습니다. 당시에는 현역 충원 후 병역자원이 남을 경우 입영을 연기하다 2~3년이 지나면 병역을 면제해줬던 장기대기 병역제도도 있었는데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방위병 제도와 함께 다 폐지하고 정상적인 활동만 가능하다면 현역복무에 상응하는 국가공공봉사 분야에 종사하도록 한 겁니다.
국방부가 당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익근무요원을 △삼림감시 및 보호 △우편수집ㆍ분류 △소방보조원 △하ㆍ폐수종말처리 △국립공원관리 △장애복지시설보조 등 10여개 분야에서 활용하도록 했는데요. 현재는 병무청 훈령인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에 분야별 임무와 형태가 명시돼있고, 기관장의 지휘ㆍ감독 아래 주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공익과 관련이 있다면 부수업무도 할 수 있습니다.
◆군인? 민간인? 애매한 신분 때문에 헷갈린다
사회복무제도의 문제점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지적돼 왔는데요. 병역제도의 한 형태지만 군사적 업무가 아닌 공공 분야에서 복무하며 사회에서 생활하지만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신분이라는 점에서 많은 모순점이 발생합니다. 사회복무요원들은 숙식이 제공되는 현역과 달리 자택에서 출퇴근을 하지만, 급여는 현역과 동일하게 월 30~50만원 가량으로 2019년 기준 100만원 상당의 월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2017년 4월에는 전직 사회복무요원 이모씨 등이 “사회복무요원은 출퇴근하므로 현역병에 비해 비용이 추가로 드는데 급여가 같아 재산권과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는데요. 헌법재판소는 3월 “현역병은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내무생활을 하며 위험에 노출돼있는데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보상의 정도를 결정할 때 이 같은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다”며 합리적 차별이라 보고 기각했습니다.
애초에는 제도가 현역 입영 대상자 중 잉여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이 컸다고 하는데요. 최근 환경은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분야에 따라 업무강도에 차이가 있지만 신체적ㆍ정신적 질병 등으로 현역병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들을 공공 분야에서 노동하도록 하면서 오히려 기관에서는 갈등이 생기고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개인의 신체적 질병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고, 정신적 질환을 가진 일부 사회복무요원들은 사회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요. 지난달 광주에서 공원관리를 하던 한 사회복무요원이 초등학생을 폭행ㆍ추행한 혐의로 논란이 일었죠. 지난해에는 서울의 한 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들이 장애학생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육부와 병무청이 합동해 실태 전수조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공무원, 사회복무요원 양측 다 불만이 많다
일부 사회복무요원들의 행태로 공무원들 역시 종종 골머리를 앓는다고 하는데요.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직원과 마찰이 많은 사회복무요원들이 있어 힘들다”며 “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도 민원인을 위협한 후 ‘정신병이 있어 민원 응대는 힘들다’고 주장하거나, 물건을 옮기는 일은 ‘허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다’ 등의 이유로 근무를 기피하며 ‘배려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더라”고 토로했습니다. 수도권의 또 다른 구청 공무원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고 비효율적이어서 기관마다 사회복무요원을 받지 않으려 떠미는 분위기”라고 전했고요.
반면 공무원들의 인식에 대해 분노하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있습니다. 최근 인천 연수구의 한 공무원이 사회복무요원에게 미세먼지 마스크 3만장 이상을 혼자 여러 차례 분류하게 하는 등 과중한 업무를 지시하고 뒷담화를 한 정황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무원의 갑질’이라 불리며 논란이 됐는데요. 누리꾼들은 “공무원이 할 일을 사회복무요원에게 떠넘기고 고마운 줄 모른다”며 비판했습니다. 규정상으로는 사회복무요원 부수업무가 가능하니 주임무에 지장을 줬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텐데요. 사회복무요원의 업무범위와 관련한 현장의 혼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앞서 사회복무요원 급여를 두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이씨 등 전ㆍ현직 사회복무요원 50명은 5월 “현대판 강제징용”이라며 “신체적 악조건으로 중노동을 수행할 수 없는 청년들에게 군사적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강제노동을 병역 의무라는 명목 하에 수행하도록 하는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폐지하라”고 다시금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29호와 105호를 비준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협약 내용에 따르면 강제노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라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이 조항들은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되, 순수한 군사적 성격의 작업은 예외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근거하면 군사적 성격이 아닌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국가에 의한 강제노동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질의에 ILO 측은 “한국의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강제노동금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회신하기도 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회복무요원 제도,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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