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질이 좋지 않으나 구속할 정도로 범죄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치열한 공방을 펼쳐 온 검찰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7일 새벽 ‘1차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유재수 전 경제부시장 비위 의혹에 대한 감찰을 무마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대해 법원은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구속의 필요성은 없다고 봤다.
8월 27일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 착수 이후 상당한 화력을 동원해 수사를 펼쳤고 유 전 부시장 사건에서도 조 전 장관을 입건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했던 검찰로서는, 이번 구속영장 기각으로 일단 ‘수사 실패’ 내지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입장이다.
조 전 장관 입장에서는 인신 구속을 피하며 △일가 수사 △감찰 무마 △울산시장 의혹 등의 ‘수사 삼각 파도’를 피해 갈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데에서 이번 영장 기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며 조 전 장관의 개인적 사정도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보여, 앞으로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할 수 있는 기회를 상당 부분 차단했다는 점도 조 전 장관이 얻은 수확이다. 법원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점 △증거 인멸ㆍ도주의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구속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이 조 전 장관의 감찰 무마 혐의를 인정한 점은 검찰에겐 소득이다. 재판에서 공식적으로 유ㆍ무죄 판단을 받기 전에 수사를 이어갈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이라는 ‘대어’를 낚는 데는 실패했지만, ‘친문(親文)’ 인사를 대상으로 수사 전선을 확대할 근거는 마련한 셈이다.
특히 조 전 장관을 심문한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조 전 장관 혐의에 대해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다”고 규정한 대목은 ‘정무적 판단’을 내세운 조 전 장관과 청와대 측의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부분이다. 김봉수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KO 승부는 아니지만 검찰이 좀 많이 이긴 판정승”이라며 “수사가 상당히 진척됐다는 말까지 덧붙여 유죄 입증이 끝났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날 서울동부지검은 “죄질이 나쁜 직권남용 범죄를 법원에서 인정한 이상, 이 사건과 관련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다만 구속영장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검찰 출신의 한 서초동 변호사는 “구속영장 청구는 수사의 한 과정이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절차는 아니다”라며 “지금 상황은 마치 영장전담판사가 수사를 지휘하는 모양새”라고 강조했다. 결국 재판 단계에서 혐의 유무를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은 향후 조 전 장관을 보강 수사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거나, 조 전 장관을 불구속 기소한 후 윗선을 밝히는 두 가지 안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이 복수의 친문 인사들로부터 유 전 부시장 구명 청탁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만큼, 수사 대상에 여러 인사들이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memory@han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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