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15일, 21대 총선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은 ‘역대 가장 긴’ 투표용지를 받아 들 공산이 커졌다. 투표용지가 너무 길어져서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보유한 전자개표기(투표용지 분류기)로 개표하는 게 불가능해질 경우 선관위는 수(手) 개표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총선 전까지 ‘비례대표 당선’만 노리는 신생 정당이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27일 현재 선관위에 등록돼 있는 정당만 34개로, 총선 후보자 등록 마감일(선거 19일 전) 기준 27개였던 20대 총선 때보다 많다.
물론 지난 총선에서도 결국 후보를 낸 정당은 21개뿐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등록 정당이 50개가 넘더라도 모두 후보를 내지는 못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한 달 새에만 4개 정당이 창당준비위를 꾸린 점을 고려하면, 내년 총선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정당이 경쟁하게 될 것이 유력하다.
이 경우 현재 선관위가 운용하고 있는 개표기로는 개표가 불가능하다. 최대 34.9㎝ 길이의 투표용지만 소화할 수 있도록 제작됐기 때문이다. 기재되는 정당 수를 기준으로 할 땐 24개가 한계치다. 앞서 선관위는 2014년, 2018년 두 번에 걸쳐 대당 약 1,000만원인 개표기를 총 2,558대 도입했다. 이 가운데 내년 총선에선 2,051대를 활용할 계획이었는데, 쓸모가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선관위는 용지 규격을 바꾸고, 정당을 표기하는 칸의 높이를 줄이는 등 방식으로 투표용지가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용지 길이가 투표기의 능력치를 넘어설 경우 사람이 직접 개표하는 방식으로 ‘회귀’하는 게 불가피하다. 선관위 관계자는 “개표기의 제작 기간이나 비용 등을 고려하면 추가 도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선관위는 수개표 요령이나 서식 등을 새로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개표 땐 기계를 쓸 때보다 개표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선거 며칠 뒤까지도 결과를 알 수 없을지 모른다. 또 개표 결과를 놓고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선관위 측은 “인력 추가 배치 등으로 처리 시간을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깜깜이 선거’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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