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무마한 혐의로 구속의 기로에 놓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가운데, 법원이 제시한 영장기각 사유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조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558자 분량의 사유를 영장에 적시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범죄혐의가 소명됐으나 도주 및 증거우려가 없다”는 것인데, 이를 자세하게 풀어 쓰면서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다.
권 부장판사는 “피의자(조 전 장관)가 직권을 남용해 유재수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는 표현을 영장판사가 단언해서 쓸 만큼 범죄 혐의 입증은 충분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혐의가 입증된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구속까지 시켜야 할 필요성은 없다고 봤다. 권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사회적 지위 △가족관계 △구속 전 피의자심문 당시의 진술 내용 및 태도 △피의자의 배우자가 최근에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점 △피의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이 사건 범행을 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 “구속해야 할 정도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기각사유 안에서도 논리가 맞지 않는다”며 즉각 반발했다. 앞에선 법치주의를 후퇴시킬 정도의 범죄임을 인정해 놓고, 뒤에서 난데 없이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취지다.
고위공직자의 감찰을 무마한 권력형 비리사건에서 법원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조직 차원에서 이뤄진 범죄를 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직권남용죄인데, 이를 판단하면서 사적 이익 도모를 고려한 건 어색하다”고 강조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본안(본 재판)도 아니고 영장기각 사유를 너무 장황하게 쓴 것 같다”며 “사유가 길면 비판의 여지도 많아지기 마련인데, 굳이 세세하게 풀어 쓰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법원 내에서는 판사가 판단 배경을 소신 있게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비판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 지역 법원의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넘어온 기록을 봤을 때 수사가 충분히 이뤄졌고, 이로 인해 범죄가 소명됐으며 해당 범죄가 중대하다는 점은 밝혀두면서도 피의자가 처한 사정을 고려했을 때 구속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라며 “말장난 같이 들릴 수는 있지만, 자세한 설명 덕분에 검사는 체면을 차렸고, 법원도 기각으로 인한 억측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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