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대중화하기 시작한 건 ‘88 서울 올림픽’ 이후일 것이다. 그 전만 해도 비행기 타고 해외에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만 30세 이상이거나, 공무ㆍ출장ㆍ유학 등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고 당국의 허가를 얻은 뒤, 출국 전 ‘안보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여권은 아무나 못 받았고, 해외 도피를 방지한다며 일가족 관광여권은 발급조차 되지 않았다. 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 됐다. 누구나 여권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일 아닌 단순 여행도 쉽게 떠날 수 있게 됐다.
□ 그래도 1989년 해외여행객 수는 2018년 2,869만명의 4.2% 정도인 121만명에 불과했다. 해외여행의 본격 대중화는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 정책이 추진되고, 1995년 외환자유화 조치에 따라 해외여행 시 달러 사용 제한이 크게 완화된 이후부터다. 그 시절 대한항공은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플래그 캐리어(Flag Carrier)’였다. 88년 제2 국적 항공사로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했지만 아직 국제선 취항은 미미했다. 그러니 해외로 나갈 때나, 해외에서 입국할 때 대한항공기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다.
□ 우리나라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박진감 넘치는 세계 주요국으로 부상하던 그 시기, 대한항공은 우리나라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플래그 캐리어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이런저런 수상 실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한항공 기내서비스는 외국의 어떤 항공사 여객기보다도 돋보였다. 항공기는 늘 안정감 있고 청결했으며, 기내식은 맛있었다. 스튜어디스들도 하나같이 맵시 있고 똑똑했다. 여객기에만 타고 있어도 뭔가 잘 정돈되고, 스피디하며,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이 저절로 느껴졌다.
□ 1990년대 이래 기업으로서도 눈부시게 성장했다. 보유 항공기 수는 90년 72대에서 지난해 166대로 늘었고, 매출액은 1조7,000억원에서 12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2000년엔 글로벌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을 주도하면서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부상했다. 하지만 얼마 전 오너 일가의 ‘땅콩 회항’ 사건 등으로 50년간 쌓아 올린 명성에 흠집이 생기더니, 요즘은 ‘남매의 난’까지 불거져 점입가경의 위기를 맞은 듯하다. 기업에서 ‘오너 리스크’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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