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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공멸 정치’와 함께 사는 지혜와 각오

입력
2019.12.26 18:00
수정
2019.12.26 18: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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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ㆍ조국 늪에 빠져 나라 두 쪽

‘共命之鳥’ 경고 외면 막판까지 국회파행

‘장기판 졸’ 아닌 주권자 매운 맛 보여야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4+1 협의체가 '연동형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가 사흘째 이어진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휴일인 까닭에 의원석은 텅 비어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4+1 협의체가 '연동형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가 사흘째 이어진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휴일인 까닭에 의원석은 텅 비어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은 1월 중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 야 3당과 공조해 국회 소집을 요구했다. 속셈은 달랐다. 한국당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국채 발행 요구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특별감찰반원과 신재민 기획재정부 사무관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며 공세를 펴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야 3당은 1월 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한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확인하려는 뜻이 더 컸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닥치고 의혹’을 확산하려는 한국당에 마당을 펼쳐줄 수 없다고 맞서 결국 ‘1+3 공조’ 국회는 무산됐다.

민주당은 12월 초 소수 야 3당을 우군으로 끌어들인 이른바 ‘4+1 협의체’ 공조로 새해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4+1은 여세를 몰아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오른 법안의 수정안을 만들어 본회의 상정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몽니와 자충수만 거듭한 한국당은 삭발ㆍ단식ㆍ농성ㆍ장외집회 등의 수단을 총동원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할 만큼 했다”는 알리바이를 남기는데 급급했다. 4+1 공조를 야합 막장 드라마로 몰아붙이며 성탄절을 필리버스터로 보낸 한국당은 자신들의 견제로 누더기가 된 선거법을 선물로 여기며 안도할 만하다.

한 해의 양끝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 정치가 1년 내내 분열과 갈등, 대립과 증오를 부추기며 ‘피아 구분의 권력투쟁’이 정치의 본령임을 제대로 보여줬다.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과 함께 정치는 실종되고 당파와 진영의 악다구니만 넘쳐났다. 그 시작과 끝에 문재인 정부 집권플랜을 입안하고 대통령의 절대 신임 아래 차기까지 넘본 조국이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는 지난해 말 국회에 나와 김태우의 의혹 제기를 “희대의 농간”으로 비난하고, 유재수 비리는 “경미한 품위 유지 위반”이라고 감쌌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김태우와 유재수의 늪에 빠져 구치소 담장 위를 거니는 신세다.

되돌아보면 여야나 좌우 진영 모두 후회되는 지점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김태우 폭로 때 민정수석실을 전면 개편했다면,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직행에 대한 내부 비판에 귀를 기울였다면, 대통령의 과도한 ‘조국 사랑’을 견제했다면, 정권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극우 세력이 발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 정부의 복덩이라는 한국당은 어떨까. 전략적 리더십 아래 여권이 흘린 악재만 제대로 주웠다면, 패스트트랙 정국에 유연하게 대처해 소수 야당을 내 편으로 잡아뒀다면, 품격과 책임으로 무장한 보수집권 플랜으로 믿음을 줬다면, 보수통합의 주도권을 쥐고 지금쯤 지지율 1위를 구가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아쉬움도 잠시, 정치권은 벌써 다른 계산에 몰두하고 있다. 여권은 40% 선의 철벽 지지대 확인과 더불어 4+1 공조체제를 가동한 데서 안도하고, 한국당은 30% 선 회복과 함께 중도층의 우군화 가능성을 이끌어낸 것에 만족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확실히 정치권의 셈법은 다르다. 진영에 기초한 아전인수식 표 계산은 낯뜨겁고 ‘비례○○당’ 운운하는 편법과 꼼수는 유권자를 ‘장기판의 졸’로 여길 뿐이다.

박근혜 정부 3년 차인 2015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나라가 온통 어둠에 휩싸이고 어지럽다’는 풀이가 나왔다. 이 지적을 흘려들은 박근혜 정부가 어떤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는 다 안다. 하지만 그 후예는 그대로 남아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적폐 청산의 깃발로 집권한 세력은 길을 잃었다.

교수신문은 문 정부 3년차인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경쟁관계의 두 개체가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눈앞 이익만 좇다 공멸하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말이란다. 지금 나라가 꼭 그 꼴이지만 이 정도 경고로 정치권이 움찔할 것 같지 않다. 상대를 죽일 수 있으면 내가 독을 마시는 것도 서슴지 않는 정치와 또 한 해를 함께 살려니 이미 마음이 무겁다. 단단한 각오로 심판을 준비하자.

논설고문 jtino57@hah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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