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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 판 그라피티 디자인… 패션에도 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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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 판 그라피티 디자인… 패션에도 통했어요”

입력
2019.12.27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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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서울&패션 2019'에 초청받은 ‘만지’ 김지만 디자이너

[저작권 한국일보] 김지만 디자이너가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 2층 만지 매장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지만 디자이너가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 2층 만지 매장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아 진로를 놓고 갈림길에 서 있었어요. 고교 시절엔 그라피티 벽화를 그리고 경찰에 쫓겨 다니기도 했죠. 그래서 제 디자인은 ‘그라피티’에서 비롯됐어요. 미술은요? 그림을 캔버스에 그리지 않고 옷에 그릴 뿐이죠.”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 2층 매장에서 만난 만지(Man.G) 김지만(37) 디자이너는 순진한 웃음기가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브랜드 이름인 만지는 자신의 이름을 거꾸로 한 것이다. 밝은 매장 벽면 곳곳에는 골목길 벽에 휘갈겨진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는 낙서가 그려져 있다. 매장 내 제품에서도 이처럼 자유분방한 그라피티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그는 프랑스 파리 15구청사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을 위해 열린 '서울&패션 2019'(지난 21일 개최) 참가 준비로 분주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김지만 디자이너가 16일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 2층 자신의 매장에서 제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김지만 디자이너가 16일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 2층 자신의 매장에서 제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그래픽 기반의 캐주얼 의류를 만드는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과 패션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고 싶어했다. 일찍부터 미술을 시작해 미술ㆍ디자인이 특화된 고교를 나온 뒤 만화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순수 국내파다. 10년 가까이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디자인 철학을 고수해왔다고 한다. “거침없고 대담하고 직관을 전적으로 강조하는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패션 2019'에 초청받는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실패도 했고, 고비도 많았다. 2007년 5월 ‘빈센트만’이란 브랜드를 내걸고 창업했다. 수요층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사업을 더 키울 욕심에 2011년 친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게 화근이었다. 상업성 위주의 트렌디한 패션을 추구하는 친구와 갈등이 커졌는데도 오히려 매출은 호조를 보이자 그는 5,000여만원의 빚은 떠안은 채 사업에서 발을 뺐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 났고 열패감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약국에서 일하는 아내를 만났고 2011년 12월 경기 의정부의 원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년간 패션회사 팀장으로 일했다. 회사원으로 일한 건 두 번 다시 사업을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술집에 그라피티를 그려주며 밤낮없이 일만했다. 그렇게 빚을 거의 다 갚아갈 즈음, 다시 패션이 숙명처럼 그를 유혹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 2층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인 김지만 디자이너. 홍인기 기자 /2019-12-1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 2층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인 김지만 디자이너. 홍인기 기자 /2019-12-16(한국일보)

사업을 기피하려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곳에서 옷을 만지다 보니 자신이 만든 옷을 매장에 다시 걸고 싶어진 것이다. “아내에게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고 거짓말하고, 창업 준비를 몰래 했어요.” 1년여 하루 3시간씩 자고 일했다. 2012년 5월 다시 창업한다고 알리자 안정적 삶을 원했던 아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 해 11월 회사를 퇴사하고 이듬해 2월 마음을 굳세게 먹고 창업을 했다. “상호명은 만지였지만 패션 콘셉트는 빈센트만을 승계했어요. 만지로 성공해야 빈센트만 실패의 트라우마를 깰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만지의 성공은 빈센트만 시절 디자인을 기억한 팬들이 먼저 알아봐주면서 꿈틀댔다. 팬들의 성원에 감동받아 T셔츠 하나하나 손으로 그리고 손 자수도 직접 짰다.

우려와 달리 두 번째 창업은 순풍이었다. 독특함과 유니섹스 성향의 디자인으로 젊은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판로 채널도 다양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업에 자신감이 붙었고 여세를 몰아 2016년 직원이 9명이 될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촉망 받는 디자이너였지만 대중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서울로7017에서 열린 ‘서울 365 패션쇼’에서였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자주 모이는 명소에서 수시로 패션쇼를 열어 패션쇼 대중화를 추구하고 있다. 디자이너 경력은 중고참이었지만 사실상의 ‘신인’으로 데뷔해 거리에서 그만의 강렬한 디자인을 어필했다.

그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후배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 제가 이렇게까지 왔다. 더 성공해 수많은 그라피티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며 잠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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