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대학 졸업 후 자격 취득 실패해 ‘생활고'
베트남 호찌민시 한인 강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모(29)씨가 공개수배 이틀만인 25일 현지 공안에 체포됐다. 필리핀에서 치의대를 졸업한 이 한국인 용의자는 범행 일체를 자백한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주호찌민 한국 총영사관과 현지 언론 뚜오이쩨 등에 따르면 이씨는 전날 밤늦게 호찌민시 공안에 체포됐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행적을 추궁받던 중 범행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체포 당시 이씨는 외국인 여행자들로 항상 북적이는 ‘여행자의 거리’에 숨어 있다가 공안의 불심검문 과정에서 덜미가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총영사관은 경찰영사를 통해 이씨를 면담하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할 예정이다.
이씨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생활고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지인은 “이씨가 필리핀에서 치의대를 졸업했지만 치과의사 자격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베트남으로 건너왔다”면서 “가라오케 등 유흥주점 알바를 전전하며 베트남 치과의사 자격 취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인은 “방 한 칸조차 구하지 못해 다른 집에 얹혀 살 정도였다”고 했다.
이씨가 검거되면서 사건은 사실상 해결됐지만, 교민 사회는 여전히 뒤숭숭한 분위기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공안이 용의자 사진을 공개한 뒤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인상착의가 비슷하다 싶으면 예외 없이 불심검문을 실시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검문에 항의하는 한국인들과 공안 사이에 적잖은 시비가 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21일 오전 1시30분쯤 호찌민시 7군 한인 밀집 지역인 푸미흥에서 사업가인 교민 A(50)씨의 집에 침입해 A씨와 아내(49), 딸(17)을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와 딸은 응급수술을 받고 회복중이지만 A씨 아내는 숨졌다. 이씨는 범행 당시 어눌한 영어를 사용해 수사 초기 베트남인일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공안은 폐쇄회로(CC)TV 영상 분석 등을 통해 이씨를 한국인으로 특정한 뒤 공개수배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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