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세대(5G) 통신망 구축 사업을 놓고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이번엔 최우방 영국을 압박했다. 국가안보가 침해 당할 우려가 있으니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압박 강도를 높이고는 있으나 최근 유럽 각국이 화웨이 배제 요청을 잇따라 거부하면서 미국은 갈수록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중국이 영국의 핵무기 비밀이든 MI6ㆍMI5(영국 정보기관) 비밀이든 국가 기밀을 도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영국이 화웨이를 일종의 상업적인 문제로 대하는 게 우리(미국)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라며 “5G는 국가 안보에 대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줄곧 화웨이 장비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의 발언은 유럽국가들을 향해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라는 압박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인 것으로 보인다. FT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5G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고 전했다. 앞서 영국 보안 당국자들은 지난해 핵심 통신망에서만 화웨이를 금지하면 보안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고 결론 냈지만 미국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정보공유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ㆍ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일원으로서 5G 통신망을 허용하면 정보 공유에 제한을 두겠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도 유럽은 화웨이 장비 도입을 강행할 분위기다. 포르투갈은 5일 자국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5G 통신망 상용화에 중국기업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못박았고, 11일 독일 이동통신사 텔레포니카 도이치란트는 5G 장비업체로 화웨이를 확정했다. 화웨이 배제를 명시적으로 선언한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 정도다.
화웨이는 ‘스파이설’을 부인하고 있다. 송카이 화웨이 대외협력ㆍ홍보부문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기술패권을 5G 시대에 잃을 수 있다는 (미국의)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응수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는 시장 점유율 30%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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