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대법 판결 집행 유력… 신일철주금 주식 현금화 가능성
“日기업 경제적 손실 입는다면 아베 내각의 대항조치 불 보듯”
24일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벗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내년 2~4월 사이 양국 관계가 다시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유력하게 예상되는 시기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경제적 손실은 절대 불가’라는 목소리를 내 왔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이 현금화되는 사태는 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한국 입장을 재확인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25일 “(문 대통령이) 분명하고 강하게 설명했다”고 전한 점을 감안하면, 두 정상은 현격한 입장 차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미루자,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 측은 올해 1월 법원에 자산압류를 신청했다. 5월에는 압류된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 신청서도 제출했다.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합작해 설립한 회사인 PNR의 주식 19만 4,794주(약 9억7,300만원) 등이 매각 대상 주식이다. 원고 측이 매각 명령을 연기한 데다 양측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현금화는 일단 미뤄지고 있지만, 내년 초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4월쯤 강제 매각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현금화가 실제 진행되면 일본은 이에 대한 대항(보복) 조치를 할 것이 유력하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17일 ‘한일 기자 교류 프로그램’ 명목으로 도쿄를 방문한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한국 산업과 경제에 가시적 피해를 입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이달 18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 법안’의 요지인 ‘일본 기업의 자발적 관여’에 일본이 긍정적 시각을 보내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다시 교수는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해 일본 기업이 돈을 낸 것도 아니고 아무 배상을 안 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관여할 수 있고 가능하면 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이번 안(문희상안)이 성립되면 일본 정부는 기업에 출자를 권유하거나 출자를 막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자발적 관여’가 피해자들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일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상당하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되면 한일 관계는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 될 텐데, 피해자들과 한국 정부가 타협할 수 있는 최소 지점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문희상 안’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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