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ㆍ폭력사태로 얼룩졌던 역대 국회
선진화법 이후 달라진 모습 이번에 확인
선거법 악용 위성정당은 민의 배반일 뿐
1958년 8월 16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는 예산안 표결을 강행하려는 자유당과 야당의 대결이 유혈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말싸움이 심해지며 예산 자료를 싸담은 보따리가 날아다니더니 급기야 물주전자가 투포환처럼 공중을 가로질렀다. 여당석을 겨냥해 한 야당 의원이 던진 이 주전자는 엉뚱하게 당시 무소속이던 민관식 의원의 머리를 5㎝나 찢어놓았고 예결위는 유혈극 무대로 돌변했다.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여야 간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없었던 적이 전무한 것 같다. 법안 상정이나 표결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거나, 아예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은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전기톱 쇠망치 같은 연장이 등장했고, 심지어 최루탄이 터진 적도 있다.
이런 국회 폭력과 여야 무한대치를 막아보자고 2012년 통과시킨 것이 국회선진화법이다.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고, 신속한 입법을 위해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며, 국회 폭력에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명시한 법 시행 이후 제법 오랫동안 국회 폭력이 잦아드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선거법과 사법개혁 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두고 벌어진 여야 몸싸움, 국회의원 감금 사태는 선진화법이 국회 폭력을 온전히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발전이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으나 이번 패스트트랙 법안 본회의 상정과 그 이후를 보면서 조금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자유한국당 등이 빠진 여야 합의로 선거제 개혁 법안이 본회의에 올랐고 이에 반발하는 한국당은 법안 저지의 일환으로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이다. 본회의 표결까지 봐야겠으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의장석 탈취, 육탄 공격 같은 낡은 ‘정글 국회’는 재연되지 않았다. 만약 이 정도로 법안 처리가 완결된다면 국회 선진화의 새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그 공은 엄연히 자유한국당 몫이다.
절제된 여야 갈등이 국회 선진화의 절차적 측면이라면, 선거법 개정은 국회 선진화의 내용이다. 비중을 따지자면 온전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민의를 더 충실히 대변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번 선거법 개정은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국회의원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되 비례 의석을 현재 47석에서 75석으로 늘려 50%를 연동하자는 것이 합의 원안이었다. 그 정도 확대로 충분하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법안 처리가 임박해오면서 도리어 비례 의석을 60석에서 50석으로 줄이자는 말이 오가다가 결국 손 대지 말자는 결론이 났다.
분명한 퇴보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선거법 개혁이 어려운데 그래도 소수 정당에 기회를 더 주는 이만한 결론이라도 낸 것은 개혁의 첫 걸음을 내디딘 정도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애초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이 새 선거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비례 의석을 늘리는 위성정당 창당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지지율에 따른 전체 의석을 계산해 그 절반 규모에서 모자라는 만큼 비례를 채워주는 50% 연동형 제도에서 지금보다 비례 의석을 뺏길 것으로 보는 자유한국당이 정당표를 몰아서 받는 방계 정당을 만들어 비례 의석을 늘려보겠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법 개혁 논의는 정당의 과대대표와 과소대표를 가능한 한 줄여 국회에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자는 것이었다. 이 원칙대로라면 거대 여야는 지금보다 의석수가 줄어들도록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꼼수는 민주주의라고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당(私黨)의 이익 실현에 지나지 않는 저급한 정치 공작일 뿐이다. 일부 지적대로 ‘정당은 그 목적ㆍ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 규정 위반일 수도 있다. 모처럼 절차적 국회 선진화에 일조하는 자유한국당이 내용적으로 국회를 후퇴시키고 ‘위헌 정당’이라는 낙인까지 자초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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