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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않는 용기·연대… 직장 갑질 이겨낸 乙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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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않는 용기·연대… 직장 갑질 이겨낸 乙들의 힘

입력
2019.12.2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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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움’ 괴롭힘에 휴직한 선배 위해 

 대신 증거 수집해 신고한 간호사 

 정작 자신은 사내 압박에 휴직 상태 

 여직원들이 임원 식사 시중 악습 

 58년 만에 노조 만들어 폐지하기도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료들을 위해 '태움' 해결에 나섰던 간호사 박선영(가명)씨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씨의 글 뒷부분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꿀 거예요. 기억하세요. 우리는 모두 귀한 사람입니다”로 끝맺는다. 박소영 기자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료들을 위해 '태움' 해결에 나섰던 간호사 박선영(가명)씨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씨의 글 뒷부분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꿀 거예요. 기억하세요. 우리는 모두 귀한 사람입니다”로 끝맺는다. 박소영 기자

“저는 최악의 순간을 생각했어요. 나도 잘못되면 직장을 잃을 수 있겠구나. 그런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두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무엇이 더 두려운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병원 수간호사의 괴롭힘에 고통 받던 간호사들을 위해 사내 고충처리 부서에 신고한 간호사)

“콜센터 상담사를 사람이 아닌 기계로 보더라고요. 상담사를 옥죄는 ‘품질서약서’를 받아보고 모두가 침묵할 때 ‘여기에 서명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한 것 자체가 저에겐 운동이었어요.” (직원들을 괴롭히는 상사 및 상담사들을 압박하던 품질서약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산업재해를 신청한 상담사)

“공짜 야근 등 무료 노동관행에 문제점을 느끼고 노조를 만들었을 뿐인데, 부모님뻘 되는 조합원들이 ‘드디어 창구가 생겼다’고 반겼어요. 제가 겪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수십 년 동안 내려오던 심각한 문제를 토로하셨죠.” (회사 창립 58년만에 첫 노동조합을 만든 신도리코 연구원)

너무 견고해서 체념하고 받아 들여온 비인간적 근무 환경. 그러나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말 한 마디, 게시판에 올린 글 한 줄이 눈덩이처럼 힘을 불려 그 견고한 벽을 깨뜨리고 바꾸곤 한다. 처음엔 늘 크고 작은 용기가 따른다. 수많은 회사에서 ‘직장 갑질’ 피해자들의 눈물이 흐를 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의 문제요, 나아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며 나선 사람들이 있다.

한국일보는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출범 2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진행했던 ‘갑질극복수기’ 공모전의 수상자 중 3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두가 침묵할 때 갑질에 대항하는 용기를 냈고, 피해로 신음하던 동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직장 내 ‘을’들의 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조직했던 이들이다.

2019년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7월)된 해였다. 상사의 갑질이나 폭언, 왕따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시정 의무를 회사가 지도록 했다. 이 법이 여론의 힘을 얻어 시행될 수 있었던 건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용기를 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지속된 ‘태움’에 용기 낸 간호사 

“동료 간호사가 ‘나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쓸모 없는 인간으로 느껴져 병원을 그만둬야겠다’고 말한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어요.”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일했던 박선영(가명ㆍ35)씨는 지난해 10ㆍ11월, 두 선배 간호사의 갑작스러운 병가 휴직 소식을 들었다. 20년차가 넘은 유능한 간호사 선배였던 이들의 휴직 사유 뒤에는 수간호사의 오래 된 괴롭힘이 있었다. “한 달 동안 밤낮으로 프로젝트를 시키고는 제출하면 반려를 반복하다가 결국 쓰지도 않고 폐기했어요. 카카오톡 단체방에 수간호사가 올리는 ‘좋은 글’에 호응하는 댓글을 안 쓰면 ‘왜 참여하지 않느냐’며 혼을 내고, 인사이동 순번이 아닌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너는 나와 생각이 다르니 네가 가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주면서 계속 괴롭혀 왔어요. 두 선배뿐 아니라 이전에도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수년간 아무도 말을 못해왔던 거죠.”

괴롭힘을 당해 온 두 간호사의 상태는 심각했다. “두 분은 ‘동맥이 끊어지는 악몽을 꿨다거나 수면제를 받아왔는데 몇 개 이상 먹으면 죽을 수 있을까’ 같은 끔찍한 말을 했어요.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하는데 문턱만 밟아도 심장이 멈출 것 같고 식도가 졸리는 느낌이라는 얘기도 하고요.”

선영씨가 두 간호사와 각별히 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일부 간호사들의 ‘태움’(간호사 선후배들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선영씨는 “내가 침묵하다가는 동료 장례식장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도 없는 막막한 상태에서 선영씨는 직장갑질119에 문의하고는 입증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두 간호사와 통화한 내용을 녹음하고, 해외 사례와 논문도 조사했다. 두 간호사가 모두 휴직한 지난해 11월 중순 선영씨는 사내 고충처리부서에 신고했고, 사내 익명게시판에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했다. 선영씨는 “폭언이란 단어도 빼고 아주 완곡하게 쓴 글인데도, ‘우리 부서 이야기 같다’, ‘나도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 있다’는 댓글이 잇따랐다. 직장 내 괴롭힘이 특정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선영씨가 두 선배 간호사를 위해 손을 내밀었듯, 그에게도 우군이 있었다. 같은 부서 동료와 후배들은 ‘우리도 뭔가 하겠다’며 사내 게시판에 조직 내 여러 문제에 관한 글을 쓰면서 화답했다.

이후 조치는 빠르게 진행됐다. 피해 간호사들을 포함해 전 부서원이 고충처리부서와 면담했고, 보름도 되지 않아 수간호사는 보직 해임돼 다른 부서의 평간호사로 발령 났다. 결국 올해 4월과 5월, 두 간호사는 원하는 부서로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한 선영씨는 정작 지난 8월부터 육아휴직 상태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내년부터 휴직하고자 했지만 당겨썼다. ‘내부고발자’ 선영씨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내 분위기를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수간호사는 제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했죠. 수간호사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같이 못 타고 계단으로 다니기도 했어요. 우리 부서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찍히는 게 싫다고 말하는 동료도 있었고요. 정신과 진료를 받다가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눈총 받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심했지만, 간호사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컸어요. 바른 말을 해도 모든 사람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요. 조직 문제를 제기하면 ‘그럼 네가 한번 해봐’라는 반응도 나오잖아요.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ㆍ고통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이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나섰기 때문에, 이만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기계 같은 조직문화에 반기 든 상담사 

올해 3월 대형 온라인 쇼핑몰의 하청업체인 A콜센터 상담사 김을매(가명ㆍ36)씨는 자리에 놓인 서류 한 장을 발견했다. 모두가 출근한 오전 시간대, 관리자가 모두에게 나눠준 서류에는 콜센터에 문의한 고객에게 상담사가 잘못된 부서를 연결하는 등 ‘오처리’를 하면 그 횟수를 종합해 조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유서 작성, 인센티브 차감, 센터장 최종면담 등 단계별 규율이 정리된 문서의 제목은 ‘품질서약서’. 고객을 응대하는 상담사의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얼마 전 한 상담사가 고객에게 욕설한 사건을 계기로 회사는 해당 상담사를 해고하고 남아있는 상담사들에게 서약서를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을매씨는 “상담사가 고객에게 욕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잖아요. 그게 깨졌다는 것은 개인 탓을 하기 전에 그만큼 상담사 업무가 정신파탄에 이를 만큼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콜센터 상담사였던 김을매(가명)씨가 전하는 손편지. 김을매씨 제공
콜센터 상담사였던 김을매(가명)씨가 전하는 손편지. 김을매씨 제공

A콜센터 상담사의 하루 의무 전화응대(의무 콜) 횟수는 120회. 4분에 1명씩 처리해야 할당량을 채울 수 있다. 하루에 다 채우지 못하면 다음날로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까지 할애해 미달한 횟수를 채우려는 상담사도 적지 않다. “한 고객에게 10분이나 20분을 쓰면 다음 고객에게 들이는 시간을 확 줄여야 해요. 하지만 상담사의 숨 넘어가듯 급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고객은 ‘왜 자꾸 끊으려 하느냐’고 반발하죠. 고객은 이미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전화하기 때문에 통화는 더 길어지고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사측이 정한 의무 콜 횟수를 달성하려고 상담사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도 게시판에 적어 이어달리기 하듯 가야 했다. 을매씨는 “수치스러웠지만 업계 특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품질서약서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는 “회사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느꼈고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품질서약서 하단에는 ‘자유의지로 심사숙고해 서명했다’는 문장이 있었지만, 관리자는 ‘빨리 서명하고 제출해달라’고 독촉했다. 동료들 모두가 군말 없이 서명하고 있던 가운데 을매씨가 일어나 관리자에게 말했다. “저는 여기에 서명하는 것이 부담스러운데요.” 그는 서약서에 적힌 ‘자유의지’대로 서명을 안 해도 되는지 물었지만, 관리자는 “무조건 써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한동안 고민했지만, 강압적 분위기 탓에 사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을매씨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우유부단해지며 상황판단 능력이 떨어졌다. 하루에 130~150콜을 처리할 정도로 실적이 좋았던 을매씨는 서약서를 쓴 지 석 달 만에 80콜까지 곤두박질쳤다. “등에 비수가 꽂힌 채 일하는 것 같았어요. 상담사는 하루에 120명을 응대하는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죠.”

결국 을매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에 입사한 지 2년만이었다. 하지만 퇴사를 하더라도 할 말은 하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서약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회사가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체념 섞인 반응도 있었지만, ‘얼마나 더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두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을매씨는 “콜센터는 100명이 들어오면 석 달 만에 90명이 나간다. 남아있는 직원 상당수도 경력단절 여성들이라 회사의 부당한 조치에 더욱 말하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을매씨는 지난 9월 퇴사하며 회사에 품질서약서 폐지, 폭언하며 직원들을 괴롭힌 상급자에 대한 징계, 상담사가 상사를 평가할 수 있는 다면평가 제도 도입 등을 요구했다. 동시에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도 신청했다. 을매씨는 문제제기는 효과가 있었다. A콜센터는 쇼핑몰에서 실시하는 상담사 근로환경 설문조사를 ‘불만 많은 직원’인 을매씨에게는 고의로 보내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고, 문제의 상급자는 한 달 만에 해고됐다. 이달 초 근로복지공단 조사가 나오자 회사는 상담사들에게 품질서약서 서명을 받지 않았다.

“콜센터는 쇼핑몰과의 계약에 문제가 생길까 봐 처음엔 개인 탓으로 잘못을 돌리다가 뒤늦게 조치에 나선 거에요. 하지만 품질서약서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회사의 갑질은 아직도 해소가 되지 않았어요.” 6개월 정도 걸리는 공단의 조사결과가 나와야 서약서 문제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지만, 그의 노력으로 남은 동료들은 그나마 조금 더 나아진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공짜 야근ㆍ밥 시중 해결한 연구원 

2014년 입사한 5년차 직원이 58년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회사에 노동조합이 들어서게끔 만든 계기는 ‘공짜 야근’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강성우(30)씨는 복사기 제조ㆍ판매업체인 신도리코의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강씨는 해외 출장 때마다 야근과 주말근무를 거듭하다가 몸이 아프자 ‘이거 이상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회사 창립 58년 만에 첫 노동조합을 만든 신도리코 강성우 분회장이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노조 설립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공짜 야근’과 같은 회사의 갑질에 퇴사를 감수하며 혼자 맞서기보다, 노조를 만들어 함께 대응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박소영 기자
회사 창립 58년 만에 첫 노동조합을 만든 신도리코 강성우 분회장이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노조 설립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공짜 야근’과 같은 회사의 갑질에 퇴사를 감수하며 혼자 맞서기보다, 노조를 만들어 함께 대응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박소영 기자

“근무 외 노동시간이 주 60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었어요. 노동법을 찾아보다가 무료 노무상담 현수막을 보고 찾아간 사무실에서 ‘공짜 야근’에 대한 체불임금을 받을 방법이 있냐고 물어봤죠. 노무사가 ‘법적으로 소송 진행하면, 회사 나와야 하는 건 알죠?’ 하더라고요.”

당연히 받아야 할 체불임금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우씨는 회사 내부에서 문제 제기할 방법을 찾았다. 회사가 싫었다면 차라리 나갔을 텐데, 프로젝트도 재미있고 동료들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사원들의 의견 수렴기구인 사원복지회에 들어가 2년간 회장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노조가 결성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눈을 떴다.

지난해 6월, 각고의 노력 끝에 결성된 노조는 정년을 앞둔 직원들의 노조 가입이라는 예상 밖 성과도 거뒀다. 성우씨는 “30년전 아산 공장의 노조결성 시도가 무산됐던 경험도 있었고, 사측의 ‘갑질’에도 말할 창구가 없어 답답했던 분들이 대거 가입했다”고 말했다.

막 문을 연 노조에 가장 심각하게 제기된 갑질 사례는 한 달에 한 번 공장을 순시하는 임원들에게 여직원들이 식사시중을 하는 문제였다. 회사 식당에서 식사하는 임원들의 수발을 들 여성 직원 2명을 순번까지 만들어 차출했고, 이런 구시대적 행태를 회사는 10여년째 이어오고 있었다. 차출된 직원들은 반찬과 국, 밥을 임원 자리에 놓은 후, 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옆에 서서 반찬이 부족할까 살펴야 했고 부르면 바로 응대해야 했다. “만삭의 임산부까지 식사 시중에 차출됐대요. 어떤 분은 ‘5년이 지난 일인데도 동료들이 나를 쳐다보던 장면과 수치심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토로하셨죠.”

노조는 사측에 임원 식사 시중을 없애라고 요구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현장을 채증하고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야 악습은 없어졌다. 노조의 힘이 발휘된 사건이었다.

신도리코에서 지난해 노동조합을 만든 강성우 분회장이 보낸 손글씨. 강성우씨 제공
신도리코에서 지난해 노동조합을 만든 강성우 분회장이 보낸 손글씨. 강성우씨 제공

권위적 조직문화에 문제의식이 컸던 젊은 세대들도 노조에 잇따라 가입했다. “민주적이지 않은 상명하복 문화를 처음 체험한 직원들이 많았어요. 당황하고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야근 문제만 해도, 선배들은 아랫사람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죠. 젊은 직원들은 갑질을 없애려는 노조의 문제의식에 공감해서 문을 두드린 거죠.”

노조가 결성된 후 회사는 ‘공짜 야근’과 같은 불만사항을 체크해서 차례대로 해결했다. 성우씨는 직장 갑질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노조결성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근로조건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노조에 유난히 경계심이 많죠. 하지만 법률 분쟁 끝에 개인이 이겨서 회사가 벌금 수천만 원을 맞아봤자 무슨 타격이 있을까요. 회사가 정말 무서워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거에요. 노조는 개인이 책임질 위험 없이 노동자가 회사와 맞설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한 유일한 조직이니까요.”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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