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관계 개선 희망” 손 내밀고, 文대통령 “멀어질 수 없는 사이” 화답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개월 만에 공식 정상회담 자리에 마주앉았지만 한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한 입장 차를 확인하며, 정상회담 때면 으레 빠지지 않는 공동언론발표도 하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양국 관계 악화 이후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해 온 것을 감안하면,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어려운 첫발은 디딘 셈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그간 소원했던 관계를 만회하려고 작심한 듯 24일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중국 청두(成都)에서 내내 붙어 다녔다. 오전 9시에 개최된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부터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가 머물렀다는 두보초당에서 열린 한중일 20주년 기념행사까지, 모두 6개의 일정을 함께 소화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및 공동언론 발표, 한중일 정상 환영오찬, 한일 정상회담이 그 사이 이어졌다.
아베 총리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모두발언에서부터 “일한 양국은 서로에게 중요 이웃”이라며 “중요한 일한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문 대통령도 “양국이 머리를 맞대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조속히 도출하기를 희망한다”며 “양국은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켜켜이 쌓인 불신을 완전히 걷어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달 22일 한국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시한을 전격 연장한 것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가까스로 봉합한 터라, 한달여 만에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이에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욕심을 내기보다 ‘대화 틀 복원’ 선에서 만족한 듯 하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고, 정상 간 만남이 자주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시점과 지소미아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규제 해제 날짜를 못박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두 정상이 관련 의견을 나눴지만 그 내용을 말할 수 없다”며 “구체적 내용은 양국 간에 향후 논의되고 협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결정할 기한과 관련해서도 “구체적 기한을 말씀 드릴 수 없지만, 무작정 길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어느 정도 기한 안에는 이 문제가 풀려야 된다는 데 대해 양국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실무 협상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양국 국내 여론이 누그러지고 두 정상이 ‘결단’을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이번 만남이 양국 국민에게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일 갈등의 뿌리인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법과 관련해 ‘피해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의 요청으로 해석됐다.
한편 문 대통령은 1박 2일의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24일밤 귀국하는 길에 ‘청두를 떠나며 - 한중일 정상회의를 마치고’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이 매우 유익한 진전이었다고 믿는다”라며 “양국 국민들께 희망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썼다. 문 대통령은 또 “한중일 3국은 불행한 과거 역사로 인해 때때로 불거지는 갈등 요소가 분명히 있지만, 우리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면서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두=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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