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개월 만에 가진 정상회담에서 '수출규제' 해결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한·일 무역갈등은 해를 넘길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24일 오후 2시6분(현지시간)부터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샹그릴라 호텔에서 아베 총리와 45분간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지난달 4일 아세안+3(한ㆍ중ㆍ일) 정상회의를 앞둔 태국 ‘노보텔 방콕 임팩트’ 회의장에서 11분 가량 환담을 진행한 바 있지만, 공식적인 정상회담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 이후 처음이다.
이날 회담은 당초 예정됐던 30분보다 15분 가량 늦게 끝났다. 1년여 만에 만난 두 정상은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복귀,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각에선 특히 지난 7월초 일본 정부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하면서 시작된 무역갈등에 대한 극적 합의도 기대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은 수출규제에 대해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룬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수출규제 해법 찾기에 실패하면서 양국의 무역갈등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6개월을 살펴보면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국내 기업의 영향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웠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9월 일본이 포토레지스트 1건, 불화수소 2건의 수출을 허가한 이후 추가 허가는 없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선 현재까지 눈에 드러난 피해는 미미한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9월부터 국산 불화수소를 일부 공정에 투입해 3개월 이상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10월부터 램테크놀로지로부터 불화수소를 납품 받아 양산에 도입했고, LG디스플레이 역시 9월 공정 전반에 쓰는 불화수소를 100%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10월 초 국산 불화수소를 생산라인에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월 일본 맥주가 국내에 단 한 개도 수출하지 못했던 것처럼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역풍'을 맞는 사례도 많았다. 아사히맥주 유통사인 롯데아사히주류는 인력을 줄이기도 했다. 일본 수입차는 4개월 연속 판매량이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닛산은 국내 '철수설'까지 돌았다.
하지만 양국 무역갈등이 장기화될 경우엔 전망을 낙관할 순 없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공개한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무역갈등이 심화될 경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일본보다 더 컸다.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원은 “일본 수출규제로 당장의 생산 차질은 없더라도 생산단가, 부품 중간재 가격이 올라가게 되면 GDP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는 산업 피해를 막기 위해 정치적으로 한ㆍ일 문제를 해결하고, 민간에서 소재ㆍ부품ㆍ장비 국산화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투자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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