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이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에게 면죄부를 줘 전 세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반면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국의 최대 무기 수입국인 사우디의 ‘실세’임을 의식해 그를 두둔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우디 법원은 23일(현지시간) 비공개 재판에서 지난해 10월 발생한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피고인 11명 중 5명에게 사형을, 살인 은폐 혐의를 받는 3명에게는 총 24년의 징역형을 각각 선고했다. 하지만 암살 사건 지휘자로 지목된 사우드 알 카타니 왕실 고위보좌관과 무함마드 알 오타이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들 2명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측근으로 꼽힌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사우디 왕실 비판칼럼을 쓰던 카슈끄지는 지난해 10월 2일 결혼증명서를 발급받으러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영사관에 갔다가 사우디 정보기관원들에게 살해됐다. 직후부터 무함마드 왕세자 배후설이 제기됐지만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
사우디 법원의 판결은 “정의에 대한 조롱”이라는 등의 비난에 직면했다. 미 CNN방송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분리하고 무함마드 왕세자의 국제적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작전’의 일부”라고 혹평했다. 카슈끄지 살인 사건을 조사해온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특별보고관은 WP 기고문에서 “살인을 청부받은 이들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정작 지휘한 이들은 자유의 몸이 됐다”면서 “이번 판결은 정의의 대척점에 있다”고 비판했다. 터키 외무부도 “진상 규명과 정의 실현을 바라는 터키와 국제사회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트럼프 미 행정부는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선 사우디가 최대 무기 수입국인데다 대(對)이란 제재의 핵심 축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카슈끄지 살해 사건 판결은 미 백악관을 제외한 전 세계의 비판여론을 불러일으켰다”고 꼬집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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