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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균형] 빈 숲

입력
2019.12.24 18:00
수정
2019.12.24 20:1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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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2013년 기록된 마지막 호랑이 중 한 마리(Akchousanh Rasphone, WildCRU, and WCS-Laos)
라오스에서 2013년 기록된 마지막 호랑이 중 한 마리(Akchousanh Rasphone, WildCRU, and WCS-Laos)

한반도는 과거 호랑이와 표범이 득실댔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 기록을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공식 기록은 사라집니다. 고종 18년(1881년) 10월 20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한양에서 단기간 내에 3마리의 표범이 잡혔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한반도는 “표범의 땅”이었습니다. 마지막 표범은 1970년 3월 경남 함양군 여항산에서 잡혀 사진으로 기록된 것이 마지막입니다.

우리에게 벌어졌던 슬픈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라오스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는 인도차이나호랑이(판테라 티그리스 코르베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미얀마에 분포했으나 이미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그 흔적이 지워졌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2007년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지요. 물론 2015년 베트남 국경 근처에서 재차 확인된 바 있지만 그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무려 17년 전 마지막으로 촬영된 인도차이나 표범. 이후 아무런 공식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WCS-Laos.
무려 17년 전 마지막으로 촬영된 인도차이나 표범. 이후 아무런 공식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WCS-Laos.

최근 이러한 현상이 라오스에서도 보고됩니다. 2019년 Global Conservation and Ecology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라오스의 가장 중요한 자연보호구 중 하나인 남엣푸우루이 국립보호구 내 6,000㎢가 넘는 지역에서 2013년부터 4년간 300개 이상의 카메라 트랩을 이용하여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2013년 호랑이 두 마리가 기록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대형 포식동물은 확인할 수 없었지요. 이 조사에서 더 충격적인 것은 표범의 국지적 멸종이라는 것입니다. 호랑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고 먹이 요구량이 적은 표범은 구대륙 전체에 널리 퍼진 종이지만 집중 밀렵에는 도무지 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레인저가 수거한 철사올무: WWF Cambodia
레인저가 수거한 철사올무: WWF Cambodia

무엇이 이들을 멸종으로 몰아갔을까요? 큰 틀에서는 부도덕적 자본주의가 문제일 것입니다. 빈부의 불균형이 결국 이 사달을 만든 것이겠죠. 생태계 보전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지역 혹은 국가 또는 전 지구적 참여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표범 가죽 한 장이 내 아이 식량이 되어야만 하므로 밀렵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동물종은 밀렵에 의해 그 최후를 맞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라오스의 한 보호구 내에서 제거한 올무만 11만개에 달한 바 있습니다.

철사올무는 그 효율성(!)이 무척 뛰어난 도구입니다. 쉽게 구하는 재료이며, 매우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대량생산하여 운반할 수 있고, 조용하게 동물들의 목숨을 노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빈 숲(empty forest)’이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현대 생태학에서는 defaunation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Fauna는 특정 지역 내 동물들의 총 집합체입니다만 동물 군집 전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물군집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 해당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종을 핵심종이라 부릅니다. 핵심종 소실은 다른 종의 생존에 급격한 영향을 미치며 결국 침묵의 숲을 만들고야 맙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생태계 균형이 흔들리는 지금도 동남아시아는 밀렵에 의해 더욱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류의 영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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