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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크리스마스 전쟁

입력
2019.12.2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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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 블루룸에 설치된 2019년 공식 백악관 크리스마스 트리. AP=연합뉴스
미국 백악관 블루룸에 설치된 2019년 공식 백악관 크리스마스 트리. AP=연합뉴스

16년 전 미국 보스턴에서 1년간 연수 생활을 하던 때 기억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웃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했다. 그 이웃은 친절한 웃음과 함께 그런 인사는 상대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확실히 알 때만 하는 게 좋다며, 잘 모르는 이에게는 ‘해피 홀리데이’가 무난하다고 알려줬다. 유대교 축제일인 ‘하누카’가 크리스마스 전후에 있기 때문에 유대인이 그 인사를 받으면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수호자를 자처한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크리스마스라 부르는 걸 거부하는 이들이 있는데, 내가 그 명칭을 되찾겠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이런 발언을 할 때마다 극우 매체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명칭을 공식적으로 홀리데이로 고치려 시도했다는 등의 가짜 뉴스를 쏟아내며 기독교 보수층을 자극한다. 급기야 올해 11월 추수감사절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명칭을 되찾았다는 ‘종전 선언’에 더해 이번에는 ‘추수감사절’ 명칭을 지키겠다며 또 다른 전쟁을 선포했다.

□ 크리스마스 정신은 ‘사랑과 관용’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배제하고 미워하는 수단으로 오용하는 일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반 유대주의자였던 헨리 포드는 1920년대에 “지난 크리스마스에 대부분 사람이 크리스마스가 누구 탄생일인지 알 수 없었는데, 크리스마스를 반대하는 유대주의자의 사악한 공격 때문”이라고 썼다. 1950년대 미 극우 반공단체인 존 버치 협회는 “빨갱이들이 크리스마스에서 그리스도 정신을 제거하려고 크리스마스 풍습을 세속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 올해 크리스마스의 연관어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북한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2017년 12월, 미 NBC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트럼프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이 “드디어 ‘크리스마스 전쟁’은 끝났다, 대신 북한과 전쟁이 곧 시작될 것이다”는 말로 웃음을 유도했다. 미국 시청자들은 웃었겠지만 당시 우리는 그 소식을 들으며 긴장해야 했는데, 미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그 장면을 다시 언급했다. 북한이 지난 3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선정하는가는 미국에 달렸다”며 연말 미사일 도발을 경고한 것과 무관치 않다. 지난밤 북ㆍ미 지도자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이뤄졌기를 기도해야 하는 걸까.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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