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대형 패션업체인 포에버21이 파산 신청과 함께 40여개국에 걸친 수백여 개의 점포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 미국 이민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여겨져 왔던 터라,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제법 크게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포에버21의 파산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거대 소비재 기업들의 파산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파산한 대형 소비재 기업의 명단 속에는 익숙한 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동복 업체 짐보리, 청바지로 유명한 디젤, 뉴욕의 대규모 백화점인 바니와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잔혹사는 몇 년째 이어지는 중입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는 시어즈의 파산 소식이 당연히 가장 충격적이었지만, 록포트(신발), 나인웨스트(종합패션)와 같은 기업들도 맥없이 쓰러져 버렸습니다. 파산이 반드시 기업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산 이후 회생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업들 상당수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혹시 되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전보다 훨씬 약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소비재 기업들이 겪는 고통은 물론 온라인쇼핑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오프라인에서 덜 삽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직접 가는 사람들이 수가 적어지고 있고, 구매 금액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온라인 구매가 증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비자의 행태와 습관이 달라진 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제품의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모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ㆍDT)이 아니고는 극복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 셈입니다. 제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쓰러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온라인쇼핑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아직 공식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제활동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올해 연간 100회 가량의 택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택배의 상당수는 물론 온라인쇼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히는 곳은 당연히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업체들입니다. 올해 대형 유통업체들의 실적 감소는 그야말로 처참합니다. 누가 봐도 위기입니다. 이른바 3대 유통 대기업인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비상 경영을 선포했습니다.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가 모두 교체되었고, 자산 매각으로 현금을 챙겨 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온라인쇼핑의 중요성을 늦게 깨닫고 디지털 전환에 뒤처졌기 때문입니다. 산업의 패권을 주도하는 업체들이 바뀌는 것은 기업 역사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니, 이들 가운데 누가 쓰러진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의 고용 규모와 특성을 생각하면 맘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에게 가장 문턱이 낮은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할인점들은 업체당 고용 규모가 3만~5만명에 달합니다. 이 일자리가 사라지는 파급 효과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유통 대기업들은 상대할 적이 없는 공룡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 공룡의 힘에 맞서 소규모 슈퍼마켓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 정책 당국의 오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이 지금도 사실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국적 대규모 자본을 등에 업은 여러 경쟁자 앞에서 우리나라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힘이 센 공룡이 아니라, 멸종을 앞둔 공룡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할인점이나 백화점을 휴일에 물류창고로 활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제한이 소규모 슈퍼마켓이 아니라 온라인 쇼핑업체에만 이득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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