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질자원연구원 노기민 박사
약품으로 300년 쓸 분량 확인
“포항과 경주에 풍부하게 매장된 벤토나이트(점토로 구성된 암석)를 왜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는지 궁금증이 생겼어요. 5명이 팀을 꾸려 연구를 시작했죠. 경상도 일대를 파악하고 성분을 분석하니 칼슘이 많은 고품질로 300년 이상 쓸 만큼 충분히 매장된 사실을 확인했어요.”
이렇게 도전한 연구에 가속이 붙고 열정이 달아오르면서 암치료 효능을 26배나 높일 신약 개발에 성공하게 됐다. 24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자연) 포항지질자원실증연구센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만난 노기민(45) 연구실장은 원통 모양의 각종 유리병과 시약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노 실장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유리병 안에 있는 화장품과 약들은 국내외 유명 제품들로 모두 점토광물을 주성분으로 만든 것”이라며 “어떤 점토를 원료로 사용했는지 분석 중”이라고 소개했다.
노기민 박사가 속한 지자연 포항센터는 이달 9일 국내 기업인 ㈜바이오파머와 20억원 상당의 기술료를 받는 조건으로 벤토나이트로 만든 신약 후보물질 5종의 기술이전 체결식을 가졌다. 3년 전 노 박사 연구팀이 국내로 전량 수입되는 벤토나이트를 경상도 일대에 다량 매장된 벤토나이트로 바꿔보겠다고 시작한 연구가 첫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벤토나이트는 작은 알갱이들이 한데 모여 단단하게 굳어진 점토 광물이다. 포항과 경북 경주 일대에선 ‘떡처럼 뭉친 흙 덩어리’라는 뜻으로 ‘떡돌’이라 불린다. 물을 빨아들이는 흡수력이 강하고 쉽게 부피가 늘어나는 ‘팽윤성’이 뛰어나다. 가정에선 고양이 배설물 처리, 공사현장에선 물막이 작업에 쓰인다.
노 박사는 “지질학을 전공한 연구원 동기 강일모 현 센터장과 환경공학, 화학공학 등을 전공한 박사 3명까지 5명이 팀을 꾸려 경상도 일대 벤토나이트 매장량 파악과 성분 분석에 들어갔다”고 말하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구팀은 이 지역 벤토나이트가 소듐보다는 칼슘이 많은 고품질이며, 의약품으로 사용하면 300년 이상 쓸 충분한 양이 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시중 의약품 중엔 위가 쓰릴 때 먹는 제산제나 지사제, 현탁액에 벤토나이트를 쓰고 있다. 노 박사는 “포항과 경주 쪽 벤토나이트가 의약품에 적합한 칼슘 성분이 많다는 걸 확인한 뒤 의약품 연구 개발에 눈을 돌렸다”고 했다. 곧바로 이장익ㆍ김대덕 서울대 약대 교수팀과 송영구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송윤구 연세대 교수팀과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그 결과 벤토나이트로 간암 표적항암제인 ‘소라페닙’의 체내 흡수율을 26배 높이는 방법을 알아냈다. 간암 치료제인 소라페닙은 몸에 잘 흡수되지 않아 암환자들이 효과를 보려면 많은 양을 먹어야 했다.
노기민 박사는 “이론적으로 기존 항암제 양보다 아주 소량을 먹어도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며 “동물실험을 통해 효능을 확인했고 내년 초 본격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뿐 아니라 잘 흡수되지 않는 위장병 치료 항생제에 벤토나이트를 첨가해 항생제를 위벽에 바로 도포시키는 데 성공했고, 확산이 빠른 고혈압 치료제의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등 5가지 의약품 기술을 획득했다.
또 마스크팩과 클렌징 등 미용 분야까지 벤토나이트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드는 연구도 시도하고 있다. 국내 광물 원자재 시장에서 벤토나이트 원광 가격은 톤 당 3만~7만원이지만 정제기술과 활용 용도에 따라 톤당 수백만 원에서 1억원까지 올라간다.
노기민 박사는 “점토광물은 한 번 사용하면 소모돼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연구가 절실하다”며 “임상시험과 거쳐야 할 산이 많지만 수입 광물을 국산으로 대체하고 국내 자원의 가치를 높여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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