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에는 영화 ‘백두산’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백두산이 폭발한다. 강진이 한반도를 덮치고, 서울과 평양은 아비규환에 휩싸인다. 재난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반도를 초토화시킬, 더 큰 폭발이 예고된다. 남한 정부는 북한의 핵을 이용해 백두산 폭발을 막기 위한 비밀 작전에 나선다.
거대 스케일과 특수효과가 필수적인 이야기다. 순제작비(마케팅비 등 제외)만 260억원이 들어갔다. 극장 기준 손익분기점은 700만명 이상이다. 영화 ‘백두산’(상영 중)은 소재와 규모만으로도 시선을 끌어 모은다.
하지만 ‘백두산’의 핵은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다. 혼자만으로도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잡을 큰 별들이다. 영화는 초반부 길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강남역 주변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묘사하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지만, 이야기 전개는 오롯이 두 배우의 몫이다. ‘백두산’은 재난영화의 전형으로 시작해 두 남자의 유쾌하고 뜨거운 교유로 마감한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이병헌, 하정우를 만나 촬영 뒷얘기를 들었다. 19일 개봉한 ‘백두산’은 22일까지 관객 246만명을 모으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처음 주고 받은 연기합
이병헌과 하정우가 연기 호흡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랫동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두 배우의 만남치고는 늦은 편이다. 이병헌은 “하정우가 평상시 보여준 재치가 영화에 100% 활용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고, 기대대로였다”고 했다. 하정우는 “연기 기계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리는 훌륭한 선배”라고 이병헌을 평가했다.
이병헌은 북한 특수요원 출신 리준평을 맡았다. 냉철한 인간병기다. 하정우는 남한 특전사 대위 조인창을 연기한다. 폭발물처리반(EOD)을 이끌고 어쩌다 비밀작전을 완수하게 된 인물이다. 준평은 딸을 만나기 위해선 인창을 이용해야 하고, 인창은 만삭의 아내 지영(배수지)이 있는 남한으로 생환하기 위해 준평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필요로 위험천만의 모험을 감행하다 상대를 동정하게 된다. 하정우는 “이야기는 다 예상 가능하니 (인창의) 단면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말자고 생각했다”며 “조금은 허술하고 우왕좌왕하는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앙상블은 ‘장갑차’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준평이 밖에서 용변을 보는 사이 장갑차에 갇힌 인창이 수갑을 풀고 도망가려는 장면이다. 준평과 인창은 남한 드라마 ‘다모’를 둘러싼 우스개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려 한다. 애드리브로만 이뤄진 이 장면은 이병헌과 하정우가 따로 촬영했다. 이병헌이 실외에서 먼저 찍은 후 한달 뒤 하정우가 촬영 장면을 보며 연기해 완성했다. 하정우는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으로 꼽았다.
◇CG, 그리고 배우
‘백두산’은 장면 반 이상이 CG에 의존한다. 컴퓨터의 힘을 빌려 백두산 폭발, 다리 붕괴 모습, 북한 함흥의 폐허 등을 보여준다. “제대로 된 영화를 언론시사회(18일) 전날 처음 볼 정도”(이병헌)로 어떤 장면이 나올지 예측불가였다. 배우들은 촬영장에서 CG를 계산하며 연기해야 했다.
이병헌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염두에 둬야만 했다”며 “버스에서 일어나다 한쪽으로 쓰러질 때 등 타이밍이 중요해 감독과 매번 상의했지만 연기하기 쉽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촬영장에선 못 봤던 배경이 나오니 내 연기보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더라”고 덧붙였다. 하정우에게 CG는 난관이기보다 자부심의 원천이다. 그는 “10년 전부터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다 보니 이젠 낯설지 않다”며 “‘백두산’ CG 완성도를 보며 이제 할리우드식이란 표현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고 평가했다.
‘백두산’은 이해준(‘나의 독재자’ 등)ㆍ김병서(‘감시자들’)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두 감독은 모니터 앞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 월화수(이 감독), 목금토(김 감독)로 나눠 연출을 했다. 하정우는 “김 감독과는 오래 전부터 친구 사이이고 김 감독과 이 감독이 워낙 친밀한 관계라 소통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며 “(현장에서) 두 감독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두 가지 버전을 찍어야 했다”고 말했다.
◇‘백두산’에서 본 미래
준평은 첫 등장 장면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인창의 허를 찌르는 동시에 관객을 흠칫 놀라게 한다. ‘내부자들’(2015)의 전라도 깡패 안상구를 떠오를 만하다. 이병헌은 “(애드리브가 아니라) 시나리오대로 한 대사”라며 “안상구는 광주 사투리, 준평은 목포 사투리를 구사한다”고 설명했다. 준평은 중국어와 러시아어도 간혹 사용한다. 이병헌은 촬영을 위해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배우는 한편 북한 말과 목포 사투리를 익혔다. 이병헌은 “목포 사투리, 북한 말 선생님은 촬영장에 상주했다”며 “북한 말보다 중국어가 힘들었다”고 했다.
하정우도 어려움을 겪었다. 촬영 마지막 날 양쪽 무릎 연골이 손상됐다. “지난해 말 마라톤 풀 코스를 처음 뛰어보고 바로 농구경기를 하며 무리를 한 게 원인”이라며 “크랭크업 날 뛰는 장면 찍는데 뚝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하정우는 “내측 연골을 다 도려냈는데 이젠 완쾌했다”고 말했다.
‘백두산’ 개봉 이후 두 사람의 포부는 닮은 듯 다르다. 이병헌은 “새로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기대가 되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 하정우는 “관객과 같이 나이 먹고, 같이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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