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시간 케이블과 종편 채널 드라마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거듭하며 체면을 구겼던 지상파 드라마들이 절치부심 끝 자존심을 회복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흥행을 필두로 한 KBS가 화려한 부활을 알렸으며, SBS 역시 ‘열혈사제’ ‘VIP’ 등의 흥행으로 만족스러운 한 해를 마무리했다. 다만 MBC 드라마는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올해 지상파 3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행보를 남긴 것은 단연 KBS였다. 자체 최고 시청률 23.8%를 기록하며 올해 지상파에서 방송된 미니시리즈 가운데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동백꽃 필 무렵’은 KBS의 자존심 회복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작품이었다.
편견에 갇힌 맹수 동백(공효진)과 촌므파탈 황용식(강하늘)의 폭격형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었던 ‘동백꽃 필 무렵’은 삶에 대한 공감을 유발하는 대사와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져 높은 시청률은 물론, 이를 뛰어넘는 화제성까지 잡으며 명실공히 올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사랑 받았다.
‘막장’ 코드 없이도 먹먹한 감동을 전하며 ‘인생작’으로 등극한 해당 작품은 세대를 불문하는 시청층을 사로잡은 스토리의 힘을 입증하며 ‘수신료의 가치 실현’을 지향하는 공영방송 KBS의 체면을 제대로 세웠다. 여기에 이어 현재 KBS는 ‘동백꽃 필 무렵’의 후속작인 ‘99억의 여자’로도 수목극 1위 왕좌를 지키며 새로운 드라마 시장 강자로 재부상했다.
이 외에도 올 한해 KBS 드라마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하나뿐인 내 편’은 무려 49.5%에 달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왜 그래 풍상씨’는 22.7%,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35.9%, 닥터 프리즈너는 15.8%를 기록했다. ‘동네 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 ‘국민 여러분!’ ‘퍼퓸’ ‘조선로코-녹두전’ ‘단, 하나의 사랑’ ‘저스티스’ 등도 1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분 좋은 마무리를 지었다. ‘너의 노래를 들려줘’ 등 다소 시청률이 아쉬웠던 작품도 있었지만, ‘위기설’까지 대두됐던 지난해와 비교하자면 확실히 ‘부활’에 성공한 모습이다.

SBS 역시 ‘지상파 위기설’을 탈출하며 2020년 더 큰 도약을 바라보게 됐다. 금토극 신설은 SBS의 위기 탈출에 있어 ‘일등 공신’이 됐다.
지난 4월 종영한 ‘열혈사제’는 SBS의 첫 금토 드라마로 편성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김남길과 이하늬, 김성균, 고준, 금새록 등이 뭉쳐 선보인 분노조절장애 가톨릭 사제와 구담경찰서 대표 형사가 펼치는 ‘공조 수사’ 이야기는 좀처럼 부진을 면치 못하던 SBS에게 뜻밖의 ‘대박 흥행’을 안겼다.
자체 최고 시청률 22%를 기록하며 매 회 큰 화제를 모았던 ‘열혈사제’의 히트로 올해 문을 연 SBS는 이후 ‘황후의 품격’(자체 최고 17.9%), ‘VIP’(자체 최고 13.9%), ‘의사 요한’(자체 최고 12.3%), ‘배가본드’(자체 최고 13.0%), ‘녹두꽃’(자체 최고 11.5%) 등을 배출하며 계속된 성적 부진의 늪을 벗어났다. 다만, ‘복수가 돌아왔다’ ‘초면에 사랑합니다’ ‘절대 그이’ ‘해치’ 등이 다소 아쉬운 성적 속 조용히 막을 내리며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지상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올해도 부진을 면치 못한 곳은 MBC였다. MBC는 거듭되는 드라마 침체 위기를 벗어나고자 ‘밤 10시 드라마 폐지, 9시 드라마 신설’이라는 편성 변경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그나마 체면을 살려준 것은 주말드라마였다. ‘신과의 약속’, ‘내 사랑 치유기’, ‘슬플 때 사랑한다’, ‘황금정원’이 각각 두 자릿수 시청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시청률 20% 벽을 넘은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없었다.
주지훈의 안방극장 복귀작이자 높은 제작비를 투입해 화제를 모았던 ‘아이템’의 흥행 부진은 MBC에게 큰 타격이었다. ‘아이템’은 자체 최고 4.9%, 최저 2.6%라는 충격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올해 방송된 MBC 월화극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몽’ 역시 200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투입해 사전제작으로 야심차게 선보여졌으나, 흡입력 없는 스토리와 약산 김원봉을 둘러싼 논란, 매력이 떨어지는 캐릭터 묘사 등으로 혹평을 받으며 평균 시청률 4.7%, 최저 2.2%의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반면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검법남녀2’ ‘웰컴2라이프’ 등은 스토리 등에 대한 호평을 받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 같은 반응이 흥행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며 한 자리대 시청률에 머무는 데 그쳤다. 정해인, 한지민의 로맨스로 화제를 모았던 첫 9시 드라마 편성작 ‘봄밤’은 최고 9.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MBC 드라마의 부활을 기대하게 했으나, 이후 방송된 ‘신입사관 구해령’ 등이 흥행 배턴을 이어가지 못했다. 현재 방송 중인 ‘하자있는 인간들’ 역시 시청률 2~3%대를 전전하며 고전 중이다.

그런가 하면 JTBC와 MBN은 각각 ‘SKY 캐슬’ ‘눈이 부시게’와 ‘우아한가’로 상상을 초월하는 히트에 성공했다.
올 상반기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며 전체 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흥행, 화제작으로 꼽혔던 ‘SKY 캐슬’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자체 최고 시청률 23.8%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패러디, 유행어 등을 탄생 시키며 모든 출연자들을 스타덤에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JTBC 드라마의 ‘효자 작품’으로 우뚝 섰다.
이후 JTBC는 김혜자, 한지민, 남주혁 주연의 ‘눈이 부시게’로 가슴 뜨거운 감동을 남기며 시청자들에게 ‘인생 드라마’를 남겼다. 자체 최고 시청률은 9.7%로 ‘SKY 캐슬’의 흥행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치였지만, 동시간대 1위를 자치함은 물론 해당 작품으로 김혜자가 ‘2019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MBN ‘우아한가’는 임수향, 이장우, 배종옥, 정원중, 문희경 등이 출연한 작품으로 출발 당시 큰 기대를 모으지 못했던 작품이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밀도 있는 스토리와 몰입감 넘치는 배우들의 호연으로 자체 최고 시청률 8.5%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우아한가’는 채널 역대 최고시청률의 새 기록을 씀과 동시에 시청자들에게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다만 그 동안 거대 자본과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 스타 제작진 등을 필두로 굵직한 흥행작을 배출해 왔던 ‘드라마 왕국’ tvN은 올해 몇 작품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호텔 델루나’는 tvN이 그나마 올해 드라마 시장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유, 여진구를 필두로 화제성과 시청률(자체 최고 12.0%)을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왕이 된 남자’도 시청률 10% 벽을 가까스로 넘었지만, 여진구의 호연으로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채널이 막대한 제작비와 역대급 배우 캐스팅 라인업을 투입해 야심차게 선보였던 기대작 ‘아스달 연대기’ 파트1~3가 혹평 속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tvN 드라마 시장 근간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이나영, 이종석의 ‘로맨스는 별책부록’ 역시 부진한 흥행을 면치 못했으며, 임수정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자백’ 등도 시청률에 있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나마 현재 방송 중인 ‘사랑의 불시착’과 ‘블랙독’이 쾌조의 스타트를 끊으며 자존심 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끝으로 OCN은 올해 역시 ‘장르물 명가’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했다. 한석규, 서강준, 김현주 등이 출연했던 ‘왓쳐’로 신선한 장르물을 향한 채널의 도전 정신을 선보인 OCN은 ‘보이스3’와 ‘구해줘2’로 장르물 시즌제 드라마의 강자다운 면모를 입증하기도 했다. 임시완이 전역 후 첫 복귀작으로 선택했던 ‘타인은 지옥이다’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좋은 예’를 보여주며 스릴러 장르물 드라마의 새 지평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시네마틱 드라마 ‘트랩’ 역시 호평 속 새 도전의 시작을 알렸다.
굳건하던 케이블 왕국에는 균열이 생겼고, 늘 ‘위기론’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지상파 드라마는 화려한 부활과 함께 내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여기에 ‘원 히트 원더’에 그치지 않기 위한 종편 채널들의 질주 역시 예고된 상황이다. 다가올 2020년 드라마 시장의 경쟁은 한층 더 뜨거워 질 전망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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