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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노장의 한마디

입력
2019.12.2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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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은 영화계의 가장 오래된 질문과 맞닿아 있다. 바로 ‘영화는 예술인가, 엔터테인먼트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논란은 노장의 한마디 이전에도 늘 회자됐던 질문이다. 사진은 지난 4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을 앞둔 서울시내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뉴스1
이번 논란은 영화계의 가장 오래된 질문과 맞닿아 있다. 바로 ‘영화는 예술인가, 엔터테인먼트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논란은 노장의 한마디 이전에도 늘 회자됐던 질문이다. 사진은 지난 4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을 앞둔 서울시내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뉴스1

얼마 전 영화팬들 사이에 노장의 한마디가 커다란 화제가 됐다.

“마블의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라기보다는 테마파크에 가깝다.”

이 말을 한 노장은 다름 아닌 미국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콜세스였다. ‘성난 황소’,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브’ 그리고 최근에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영화 ‘아이리쉬 맨’을 만든 그가 영국의 ‘엠파이어’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한마디는 영화계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의 거장 플랜시스 코폴라와 영국의 감독 켄 로치 등은 동의를 표했지만 엄청난 수의 마블 팬들은 격렬한 어조로 비판을 했다.

영화계의 거장이 이렇게까지 언급하는 걸 보면 마블의 영화가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한 모양이다. 사실 흥행 면에서 마블의 영화를 따라올 만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내 주변에서도 노장의 한마디를 두고 왈가왈부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영화계의 가장 오래된 질문과 맞닿아 있다. 바로 ‘영화는 예술인가, 엔터테인먼트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논란은 노장의 한마디 이전에도 늘 회자됐던 질문이다.

요즘은 흔히 사용되는 영화 단어 중 ‘블록버스터(blockbuster)’란 말이 있다.

본래 한 구역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폭탄을 일컫던 단어인데 현재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엄청난 흥행을 한 영화를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원조이자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바로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다. 197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최초로 흥행 1억달러를 돌파했다. 그 뒤를 이어 스타워즈 등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고 현재의 마블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죠스가 영화관을 완전히 장악하자 수많은 평론가들이 비판한 것이 ‘블록버스터를 영화로 볼 것이냐’하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흥행에 집착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면을 손상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보면 영화계가 블록버스터를 만들 만한 위기 의식이 이면에 존재했다.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발전을 시작한 TV드라마는 점차 영화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고 극장을 찾는 관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게 바로 TV드라마가 넘볼 수 없는 이야기와 제작비를 투자해 만드는 영화, 바로 블록버스터였다. 메이저사들의 예상은 적중했고 이후 영화는 블록버스터 위주로 재편되게 된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마블이라는 새로운 가면을 쓰고 다시 흡사한 비판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산업의 면에서 영화를 보자면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영화는 소설이나 미술에 비해 거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극장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선 엔터테인먼트인 면이 다분하다. 영화의 시작도 엔터테인먼트와 맞닿아있다. 영화의 창시자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의 도착’을 창고에서 상영했을 당시 입장료를 1프랑씩 받았던 것만 봐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상영되었다는 것을 방증하니까. 하지만 노장의 말대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왜냐면 그의 영화가 나를 비롯한 많은 영화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솔직한 내 입장은 과연 이런 논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려 있고 때로는 오락의 목적으로, 때로는 영감을 받기 위해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감정은 다양하며 많은 종류의 감동을 요구하니까. 노장이 뭐라 하건 마블 팬들이 격한 어조로 비판하건 우리는 그저 그들이 만드는 영화들이 우리를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슬프게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다.

장용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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