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권리 증진 앞장 노동당 래미 의원 출사표
영국 노동당 120년 역사에서 첫 흑인 대표가 탄생할지 주목된다. 최근 조기총선에서 74년만의 굴욕적인 참패 직후 제러미 코빈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흑인인 데이비드 래미(47) 하원의원이 대표직 도전을 선언했다. 그가 당권을 잡게 되면 영국 최초의 유색인종 당수가 된다.
래미 의원은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에 기고한 글에서 “노동당이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맞서려면 공유된 가치에 기반해 체질을 바꿔야 한다”면서 대표직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다. 런던 토트넘을 지역구로 하는 래미 의원은 2000년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줄곧 소수자 권리 증진에 힘써 왔다.
래미 의원은 존슨 총리와의 차별화를 위해 ‘시민 민족주의(civil nationalisim)’를 주창하고 나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밀어붙이는 존슨의 민족주의가 피부색과 종교 등에 기반한 대중영합주의라면, 자신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코빈 대표를 향해서도 “경제 정의를 향한 코빈의 믿음은 의로웠지만 의석을 잃고 말았다”면서 “가장 큰 이슈에 대한 전략을 포기한 것은 무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코빈 대표의 급진적인 공약과 함께 우유부단한 브렉시트 정책이 전통적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했다는 분석과 맥이 닿아 있는 비판이다.
물론 차별화가 당선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래미 의원의 개혁 구상은 코빈 대표만큼이나 과격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는 1600년대 만들어진 권리장전을 포함한 헌법 개정, 새로운 비례대표 시스템 도입, 젊은층에 대한 기초소득 지급 등을 주장한다. 가디언은 “래미 의원이 당권을 쥐면 흑인과 아시아인, 소수민족을 뜻하는 ‘BAME(Black, Asian and minority ethnic)’ 출신 첫 당수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총선 참패의 충격파가 워낙 큰 탓에 당권 경쟁의 윤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현재까지는 각각 예비내각의 외무장관과 재무장관인 에밀리 손베리 의원, 클라이브 루이스 의원만 출마를 확정한 상태다. ‘코빈의 계승자’로 불리는 레베카 롱 베일리 예비내각 기업부 장관의 출마 여부에 따라 노선 투쟁이 가열될 수 있다. 옵저버는 “명백히 최악의 선거 결과가 나왔는데도 롱 베일리가 대표가 되면 당내 온건세력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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