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전 전ㆍ후 각 무연고자 묘일 가능성 커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 유골 40여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옛 광주교도소가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 암매장 장소로 알려진 탓에 일부 5ㆍ18 단체 관계자들은 5ㆍ18희생자 유골일 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 신원 미상의 유골들은 당초 무연고 수용자 유골 41구가 안장돼 있다는 기록(관리대장)이 남아 있는 합장묘에서 추가로 발견됐다.
문제는 이 집단 유골들이 합장묘 봉분과 그 지하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각각 나뉘어져 안장된 데다 별다른 신원 표식도 없는 터라, 어떤 게 5ㆍ18 연관성이 제기된 신원 미상 유골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지난 19일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내 무연고자 공동묘지에 있던 합장묘 2개 중 1번기(基) 봉분 표피를 30㎝ 가량 걷어낸 뒤 흙더미 속에 뒤엉켜 있던 유골 41구를 수습했다. 법무부는 당초 이 유골들이 관리대장에 기록된 무연고 수용자들의 유골로 봤다.
그러나 1번기 지하에서 발견된 가로 1m 세로 1m 깊이 1.5m의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40여구의 유골이 추가로 나오면서 유골들의 신원을 두고 미궁에 빠졌다. 애초 봉분에서 나온 유골들을 기록상 무연고자 유골들로 봤던 법무부는 나중에 신원 미상 유골이라고 입장을 바꿨지만 그 근거는 없다. 여기에 일부 5ㆍ18단체 관계자들도 법무부 의견에 보조를 맞추며 봉분에서 나온 유골들이 5ㆍ18 희생자들의 것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5ㆍ18 당시 다른 곳에 매장됐던 희생자들의 육탈(肉脫)된 유골들이 합장묘 1번기 봉분 속으로 옮겨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그러면서 콘크리트 구조물 내 유골들을 법무부 기록 무연고 수용자들의 유골로 추정했다.
하지만 육탈되는데 보통 10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 장묘 전문가는 “5ㆍ18 단체 주장대로라면 이 유골들은 1990년쯤에 이장됐다고 봐야 하는데, 당시 지역 사회 분위기 등으로 미뤄 볼 때 가능했을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유골 안장 방식을 보더라도 과연 법무부 생각처럼 봉분 속에 있던 게 신원 미상 유골들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여전하다. 실제 1975년 조성된 합장묘 2번기엔 신원이 확인된 유골 20구가 안장돼 있었는데, 이 유골들 모두 봉분 속에서 발견됐다. 지하 콘크리트 구조물만 없을 뿐 1971년 4월에 조성된 1번기 봉분 속에서 나온 유골들과 같은 안장 형태였다. 봉분 속 유골들이 법무부 기록상 1971년 4월부터 1995년 9월까지 사망한 수용자들의 유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콘크리트 구조물 내 유골들은 광주교도소가 1971년 동구 동명동에서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하면서 동명동에 있던 무연고자 유골들을 옮겨 놓은 것이라는 개연성이 나온다. 이 경우 1번기 봉분에서 나온 유골들은 법무부 기록 유골일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법무부와 군, 경찰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반 관계자는 “봉분과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나온 유골들 가운데 어떤 것이 법무부 기록 유골인지 아직 알 수 없다”며 유골 80여구의 유전자를 확보한 뒤 5ㆍ18행방불명자 신고 가족(295명) DNA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계획이지만 정확한 신원 확인까지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구멍이 뚫린 두개골 2개도 크기 등을 볼 때 총상이기보다는 자연훼손일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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