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성폭행으로 감옥 간 전남편, 아이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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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성폭행으로 감옥 간 전남편, 아이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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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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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3년 전 남편의 외도로 이혼 후 아이 둘(10세, 7세)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전 남편은 내연녀 성폭행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습니다. 처음엔 두 아이 다 어려서 아빠가 멀리 외국 가서 일한다고 했어요. 큰 아이에겐 초등학생이 됐을 때 이혼한 사실을 알려줬고, 외국은 아니지만 멀리 있어서 연락이 안 된다고만 설명해주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숨겨야 할지 고민이에요. 아빠가 보고 싶다면 ‘좀 더 크면 만날 수 있어’라고 하지만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냐’고 되묻는 아이를 보며 말문이 막혀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이혼하셨어요. 어렸을 때는 자주 혼내는 엄마가 무서웠어요. 이혼 전날 밤에 저에게 누구하고 살겠느냐고 묻길래 아빠랑 산다고 대답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음날 엄마가 떠날 때도 그저 엄마한테 혼나지 않아 좋다는 철없는 생각만 했습니다. 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동생을 고모에게 맡겼습니다. 학원비나 용돈 등을 꼬박꼬박 챙겨줬지만, 고모가 우리 학원비를 떼 먹었다는 걸 알게 되자 아빠는 중학생이던 저와 동생을 데려왔습니다. 아빠는 그때 새엄마와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애가 둘인 아빠와 살아주는 새엄마까지도 무척 고마웠어요.

하지만 커서는 아빠와는 사이가 벌어졌어요. 아빠의 술과 외도, 도박을 알게 됐거든요. 대학생 때는 식당을 하며 혼자 살던 엄마를 만났습니다. 그제야 새엄마 때문에 가정이 깨졌고 엄마는 자살도 시도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엄마와 만난 사실을 안 아빠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남편과는 직장인 동호회에서 만났습니다. 안정감을 갖고 싶어 빨리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예민해 매일 밤 울었고, 남편은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도 육아를 도와주기는커녕 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마구 흔들었어요. 그 무렵에 제 건강도 나빠지고, 남편은 외박을 했습니다. 바람 피우는 걸 의심하다 결국 이혼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이혼 뒤엔 아이 맡길 곳도, 직장도 구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습니다. 아이가 상처받을 것 같아 숨겼는데, 큰 아이가 왜 자기만 무료로 학교 우유급식을 받는지 궁금해해요. 2년 전엔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놀라긴 했지만 슬프진 않았어요.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혜란(가명ㆍ40세ㆍ주부)


혜란씨,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마치 칠흑 같은 어둠처럼 앞이 안 보이는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지요. 조금만 움직여도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것 같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지요. 부모의 상실은 아주 극심한 고통인데,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떠난 아빠의 소식을 듣고 당신이 크게 슬퍼하지 않게 된 그 마음은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 아빠와의 좋았던 추억이 많았고, 딸을 무척 예뻐한 아빠였는데도 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엄마를 만난 후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아빠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절망감이 자리했을 거에요. 새엄마가 가정을 깨트린,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만든 존재인줄도 모르고 그를 따랐던 당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지도 몰라요. 어렸을 땐 엄마가 무서워서 아빠와 같이 살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피해자였고,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힘들게 살았는데 그걸 몰랐던 당신 스스로에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많이 났을 거에요. 당신 스스로 ‘왜 그때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니’라는 죄책감이 들었을 거에요. 그렇게 좋아했던 아빠 옆에 남았는데 외도를 하고 엄마를 버린 사람이 아빠란 사실을 알고 아빠에 대한 실망감도 매우 컸을 거에요. 그런데도 아빠가 반성은커녕 엄마를 계속 만나면 연을 끊자고 해서 당신의 실망감은 더 커졌을 거에요. 당신 안에는 ‘아빠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 이런 아빠 때문에 엄마를 배신하고, 엄마를 오해했던 내가 너무 한심해’라는 마음이 확 일어나면서 마음의 동요가 컸을 거에요.

분노의 화살은 사실 아빠가 아니라 혜란씨 스스로에게 향해요. 당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일 거에요. 어렸을 적 잘못된 결정 때문에 당신 스스로가 당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들 거에요. ‘내가 결정하는 게 맞을까’라는 의심이 끝도 없이 들겠죠. 그런 판단을 했던 당신 스스로 용서가 안될 겁니다. 그렇게 된 것은 아빠 때문인 거고, 결국 아빠가 미워졌을 거에요. 혜란씨, 당신은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서 눈물이 안 나오는 거에요. 그 마음이 녹으면 아버지의 상실이 굉장히 슬프게 다가올 거에요.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맺는 인간관계가 부모잖아요. 부모와의 관계가 편치 않으면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간관계가 흔들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이 무책임한 전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한 것도 아마 그런 영향이었을 거에요. 전 남편은 결혼 전엔 다정다감했을 거에요. 당신의 외로움을 메워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남편의 모습에 결혼까지 결심했겠지만, 남편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어요. 외도를 했던 아빠와 남편은 어떤 면에서 몹시 닮았어요. 당신이 어렸을 적 부모와의 관계가 편치 않았기 때문에 남편이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기가 어려웠을 거에요.

혜란씨,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과거를 돌이켜보면 후회되고, 미안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지요. 그런데 그때 어린 시절 아빠와 살겠다고 한 그때 그 아이는 어른인 지금의 당신이 아니에요. 어렸을 때 당신이 한 행동에 대해 너무 자신을 단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에게도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남편의 일도 당신 탓이 아니에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이 너무 많으면 자기 자신이 미워져요. 그렇게 판단한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이 커져서 불안이 생기고, 그 다음에는 판단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새엄마에게 고마워하고, 아버지가 너무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대학생이 돼서 엄마를 만난 다음에 상황을 알게 돼서 엄마를 돌봐드려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럴 수밖에 없고, 연을 끊자는 아버지에게 실망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 당신은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 엄마에 대한 죄책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불안감과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 등 너무나 다양한 감정이 얽혀져 있고 상황이 복잡해 뭔가 놓쳐버린 사람 같아요.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이 감정들을 잘 추스르고 깨달아, 아이들이 클 때까지는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 가르쳐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하면 안 됩니다. 외국에 있어도 화상 통화하면 된다는 걸 아이들은 다 알아요. 다만 외도라든가, 폭행으로 감옥에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이 감당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니 ‘아빠가 한국에 있는데 당분간 올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못 만나는 거고, 그 사정은 네가 재촉한다고 올 수 있는 건 아니고, 아빠가 너희를 더 사랑한다고 해서 더 빨리 올 수 있는 건 아니야’라고 알려주는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사정이 뭔데요’라고 물으면 ‘조금 더 크면 정확하게 얘기해줄게. 감추는 게 아니라 나이에 따라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니 조금 더 크면 얘기해줄게. 네가 똑똑하지만, 나이라는 게 있으니 때가 되면 알려줄게’라고 해보세요. 그리고 전 남편이 감옥에서라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준다면 도움이 될 거에요. 둘째는 아빠 얼굴을 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으니, 어렸을 때 찍었던 즐거웠던 추억의 사진 등을 보여주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못 오는 거라고 생각해야 아이들이 상처를 덜 받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눈치를 챕니다. 전 남편이 감옥에서 나올 때쯤엔 얘기를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만 앉혀놓고 아빠는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데 문제가 있었고, 도를 넘은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 것이라고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너희한테 어떻게 보면 진짜 어른다운 어른은 아닐지 몰라도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하지 마라’고 해주세요. 물론 아빠는 아빠일 뿐, 그런 아빠를 좋아하라고 강요하거나, 이해하라고 할 필욘 없습니다.

사춘기를 앞둔 아이가 자기 정체성을 범죄자인 아빠와 동일시하면 안됩니다. 아이에게 ‘아빠는 아빠고, 너는 너야. 아빠가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아빠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고 이제 나오는 것이니, 어떻게 생활하는지 우리가 잘 지켜보자. 너는 너의 눈으로 네 삶을 살아가면 된다’라고 해주세요. 아빠가 없는 상황에 대해 첫째는 어른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한쪽 부모가 사망하거나 같이 못할 때 자식들은 내 옆에 있는 부모가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에 잃게 될까 봐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곤 합니다. 그런 점을 읽고 혜란씨가 ‘네가 힘든 점을 말해주는 것은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 의논하고, 머리도 맞대보고, 방법도 찾아보고 그렇게 해준다면 굉장히 힘이 되는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게티이미지뱅크

기초생활수급자란 사실에 대해서도 좀 더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적인 것은 언제나 상황이 바뀌는 거에요. 아이한테 “현재는 엄마가 너희를 혼자 돌봐야 하고, 그런데 엄마가 건강도 안 좋아서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거야. 고마운 일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열심히 살아서 할 일을 하고, 나중에 상황이 괜찮아지면 우리도 다른 사람을 도우면 된다”라고 말해주세요. 경제적인 어려움은 결코 부끄럽거나 흉이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얘기해야 해요. 당신이 게을러서, 당신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당신이 부족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고,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보자 라고 해주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훌륭한 엄마이고,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훌륭할 겁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과 함께라면 아이들은 잘 클 겁니다. 혜란씨, 힘을 내세요. 당신은 잘해낼 수 있어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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