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처음 밝히는데, 눈이 지금 안 좋습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32)이 깜짝 고백을 했다. 정찬성은 21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 ‘UFC 파이트 나이트 부산’ 메인이벤트 페더급(66㎏ 이하) 경기에서 프랭키 에드가(38ㆍ미국)를 1라운드 3분18초 만에 TKO승으로 꺾었다. 2012년 UFC 데뷔 후 처음으로 국내 팬들 앞에 선 그는 화끈한 경기로 격투기의 묘미를 선보였다.
“좀비!”를 외치는 팬들의 환호 속에 옥타곤으로 향한 정찬성은 1라운드 시작과 함께 폭풍처럼 에드가를 몰아붙여 체육관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정찬성은 경기 시작 1분도 안 돼 어퍼컷에 이은 펀치로 에드가를 고꾸라뜨렸다. 쓰러진 에드가를 상대로 상위 포지션을 점령해 파운딩 펀치를 쉴 새 없이 쏟아내 승기를 잡았다. 힘겹게 버텨낸 에드가는 다시 일어섰지만 집요하게 몰아붙인 정찬성의 펀치에 다시 쓰러졌고, 결국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기쁨의 여운이 가신 후 정찬성은 그 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2013년 8월 한국인 선수 최초로 도전한 타이틀전에서 당시 페더급 챔피언 조제 알도(브라질)에게 TKO로 패할 때 눈을 다쳤다. 대회 후 안와골절 수술을 받고 완전히 회복한 듯 알았지만 후유증이 남았고, 부작용은 최근에 더 심해졌다.
정찬성은 에드가전을 승리로 장식한 뒤 “안와골절 수술 부작용이라고 해야 하나. 눈 안에 무언가 껴있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진을 팬들이 봤을 것인데, 초점을 맞춰주는 안경”이라며 “사실 (앞에 있는) 사람이 2명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시각 문제가 있는데도, 정찬성은 실전에서 에드가의 안면에 거침 없이 펀치를 적중시켰다. 그는 “신기한 게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더라”면서 웃은 뒤 “계속 하다 보니까 적응이 됐다. 크게 나뉘어 보이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하나 정도 차이”라고 설명했다.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어 부산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정찬성은 당차게 페더급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호주)에게 공개적으로 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그 전에 시각 문제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정찬성은 “당장 눈 수술 먼저 해야 한다”며 “다행히 큰 수술이 아니라 한 두 달 안에 회복 가능하다. 내년 5~6월쯤이면 싸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부산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 체중 관리에 매달렸던 정찬성이 경기 후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은 떡볶이다. 정찬성은 “경기를 준비하는데 TV에 계속 떡볶이가 나오고, 주위 코치들도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어도 정찬성은 UFC로부터 흥행성을 인정 받은 파이터다. 2011년 UFC에 데뷔해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세계 3위까지 올랐고, 한국인 최초로 타이틀전에 도전했다. 6년 전 전성기 못지 않게 노련한 경기 운영과 경험이 더해져 다시 한번 챔피언 타이틀을 노릴 기세다.
제2의 전성기를 연 원동력은 가족이다. 2014년 결혼 후 두 딸과 막내 아들을 둔 정찬성은 “20대엔 나를 위해 싸우는 파이터였지만 30대엔 가족을 위해 싸우게 됐다”고 밝혔다. 또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가족을 지키려고 운동한다”고 말했다. 이번 크리스마스 역시 세 아이와 놀아주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부산=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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