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 관련 재판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삼성 측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뇌물공여) 파기환송 재판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증거인멸 사건과 삼성 노조와해 사건의 1심 재판부가 모두 ‘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행’이라고 판단함에 따라 국정농단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증거인멸 및 삼성전자서비스ㆍ에버랜드 노조와해 사건은 이달 17일로 1심 판결을 모두 마쳤다. 사장ㆍ부사장 등 고위급 임원들이 줄줄이 실형을 선고 받았고, 일부는 선고 당일 법정에서 구속됐다.
재판부는 각각 달랐지만, 모두 그룹 차원의 행위라는 점이 인정됐다. 먼저 삼성바이오 1심은 “엄청난 자료 일체가 그룹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인멸ㆍ은닉됐고, 이로 인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5월1일 분식회계 등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삼성에 행정제재 등 조치 예정사항을 통보하자, 삼성은 5월5일 주요 임원들이 모인 긴급대책회의에서 보유한 일체의 자료를 삭제하기로 했다. 회의 직후 임원들은 각자 자신이 소속된 부서 상무나 대표이사를 통해 수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초반엔 ‘선별적으로 삭제하라’고만 했으나, 곧 ‘JY(이재용)’, ‘합병’ 등의 키워드 검색을 통한 삭제를 요구했다. 완벽한 삭제를 위해 그룹 내에서 보안을 담당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삭제한 로그기록 자체를 없앴고, 삭제된 파일이 복구되지 않도록 삭제 전문프로그램을 사용했다.
노조와해 사건은 ‘그룹→미전실→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로 이어지며 보다 치밀하게 이뤄졌다.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대응방안’ 문건은 노조와해의 지침서 역할을 했고, 관련 내용은 그룹 최상부에도 보고됐다. 노조의 이상 움직임이 파악되면 해당 계열사에 상황실이 설치됐고, 미전실은 사안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삼성전자서비스 상황실 경우, 협력업체 차원의 노조가 설립되기 한 달 전인 2013년 6월 설치됐다. 상황실은 협력업체를 폐업한 후 노조원이 아닌 노동자만 다른 협력업체로 재취업 시키는 ‘기획폐업’ 및 단체교섭 지연 등을 진행했다. 이듬해 5월엔 사망한 양산분회장의 장례를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르기 위해 유족에 6억원을 주고 시신을 빼돌리기도 했다.
노조 설립 계획을 담은 문서가 발견된 직후 설치된 에버랜드 상황실도 다르지 않았다. 상황실은 어용노조를 만들고, 각종 징계사유를 수집해 주축 노조원을 해고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들이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도 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총수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심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심이긴 하지만 법원이 그룹차원의 범죄임을 인정한 만큼,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에도 심증적으로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도 “판결문에 부정적 양형요소로 제시하는 등 재판부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는 별도의 범죄 사실이나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범행을 기존 심리사건의 핵심적 형벌가중적 양형 조건으로 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노조와해 사건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던 시기에 발생한 일인 만큼 이 부분까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양형에 고려하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도 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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