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베개, 책 냄비받침, 북 퍼퓸까지…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 직장인 조주희(39)씨는 서점에 들어가 책을 고르는 대신, 읽을 책을 고른 다음 이용할 서점을 선택한다. 각 온라인 서점마다 내놓는 책 관련 굿즈(goods·상품)를 비교해 보고, 마음에 드는 굿즈를 얻기 위해서다. 책 한 권만 사도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지만, 읽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 5만원 이상이 되면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한다. ‘5만원 이상 시 제공’ 등 굿즈 구입을 위한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다. “굿즈를 샀더니 책이 왔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그는 최근 책ㆍ문학 관련 굿즈에 푹 빠져 있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굿즈 문화’가 문학계에도 번지고 있다. 굿즈는 그대로 번역하면 상품이란 뜻이지만, 특정 연예인이나 영화 등의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기획 상품을 주로 이른다.
최근에는 대형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를 통해 문학, 책 관련 굿즈가 속속 나오면서 문학 소년소녀들의 ‘팬심’을 자극하고 있다. 한때 ‘예쁜 쓰레기’라 불릴 정도로 실용성이 부족한 장식품 정도로만 소비됐다면, 이제 디자인과 실용성을 겸비한 제품으로 독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문학 작품이나 작가를 모티브로 한 굿즈 제작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곳 중 하나는 서점 알라딘이다.
알라딘은 2014년 책 모양을 그대로 가져와 인쇄한 책 베개와 책 제목을 새겨 넣은 냄비 받침 등을 선보였는데 입소문을 타며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자체 브랜드까지 론칭해 양말과 옷 등 의류는 물론 수세미, 포크, 쓰레기통 등 각종 주방ㆍ생활용품까지 문학 작품을 활용해 제작, 판매해오고 있다.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굿즈를 따로 팔지만, 주로 해당 사이트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책을 사는 고객에게만 마일리지를 차감하는 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출판사들도 일찌감치 문학 굿즈 시장에 뛰어들었다. 민음사, 문학동네 등 대형 출판사에서는 멤버십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연 회비를 낸 회원에게만 작품 관련 한정판 굿즈를 제공한다. 고전문학의 특별판 재출간 등 출간 시기를 기념해 책과 함께 나오는 굿즈도 인기가 좋다.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 1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패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포스터를 구입한 대학생 김모씨는 “(굿즈는) 책 쓰는데 들어간 작가의 노력과 굿즈 제작에 들어간 디자이너의 정성까지 담겨있다”며 “책 읽을 때 느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감정을 경험해 볼 수 있다”구입 이유를 밝혔다.
문학 굿즈에 대한 반응이 좋다 보니 서점이나 출판사가 아닌데도 문학 굿즈만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책에 뿌리는 향수인 북퍼퓸을 판매 중인 글입다공방은 문학 작품을 모티브로 향수를 만들었다.
새하얀 눈길을 걷는 청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향을 만드는 식이다. 안동혁 글입다공방 대표는 “문학이 교과서에 나오는 딱딱한 텍스트가 아닌 일상에서 감각으로 느껴지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달력, 노트, 다이어리까지 업체들이 내놓은 제품 종류도 다양하다.
‘문학 굿즈’의 인기는 자신의 정치사회적 신념을 소비행위로 드러내고 지인들과 적극 공유하는 밀레니얼, Z세대의 소비 성향과도 맥이 닿는다. 대학생 김민준(24)씨는 학내 독서토론 모임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속 구절인 “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자기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될 필요가 없다)”가 인쇄된 에코백을 단체 구입했다. 김씨는 “작품을 읽고 토론하며 공유한 감정을 굿즈를 나눠 가짐으로써 계속 이어갈 수 있다”라며 “작품과 굿즈를 함께 고르며 또 다른 재미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령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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