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강사 투쟁’ 텐트 7년 만에 철거… “학생들 없인 불가능했다”
“그간 텐트를 한 여섯 번 정도 걷어서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김영곤(70)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대표는 2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부 앞에서 7년여 전 설치했던 텐트를 걷어내며 너스레를 떨었다. 2007년 국회 앞 텐트 농성부터 따지면 무려 13년에 이르는 지난한 농성이었다. 그 길었던 투쟁에 마침표를 찍는 날 백발이 성성해진 김 대표가 텐트를 걷어낸 자리에는 낙엽과 흙이 텐트의 흔적을 보여줬다. 텐트가 깔고 앉았던 보도블록 사이로는 나무뿌리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고려대 서울캠퍼스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을 7년간 지키며 대학 시간강사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텐트가 이날 철거됐다. 고려대 총학생회와 전국대학강사노조는 텐트가 있던 자리에 ‘민주광장 강사 투쟁 기림판’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열었다. 기림판엔 ‘이 자리에 억압받는 비정규직 강사의 해방과 비판적 대학교육을 이루기 위한 텐트가 있었다’는 문구가 적혔다.
김영곤 대표는 텐트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끝날 줄 몰랐는데 끝이 났다. 인내심 싸움을 했는데 이긴 것 같지 않나”며 “투쟁을 배로 치자면 물이 차서 배가 떴다. 저나 여러분이 물 역할을 했다”며 뿌듯해 했다.
김 대표의 부인인 김동애(72)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대표는 “저는 20년, 김영곤 선생님이 13년을 싸운 원동력은 학생들이었다”며 “학생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 부부는 2007년 9월 7일 대학 시간강사 교원 지위 회복을 주장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해 올해 9월 2일까지 텐트를 집 삼아 농성을 이어왔다. 김동애 대표는 1999년 한성대에서 해고되며 대학과 정부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20년에 이르는 투쟁이다.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교원지위 회복을 약속했던 터라 이 부부조차도 투쟁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개정 고등교육법(일명 강사법)은 이미 시행됐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영곤 대표는 “시간강사는 여전히 교육공무원법ㆍ사립학교법ㆍ공무원연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며 “후배 강사와 학생이 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담당 교수의 논문대필 강요 등을 고발하고 숨진 서정민 박사가 논문 저자로 인정받는 것 등도 과제로 꼽았다.
고려대 텐트 철거는 지난 8월 강사법 시행 이후 총학생회가 김 대표와 대학 본부 간 징검다리 역할을 해서 이끌어냈다. 철거한 텐트는 고려대 박물관으로 옮겨져 시간강사 투쟁에 관한 자료로 전시될 예정이다. 국회 앞에 설치했던 텐트는 지난 9월 2일 먼저 철거돼 성공회대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김 대표 부부는 앞으로 본업인 연구와 집필에 집중할 계획이다. 김영곤 대표는 노동사, 김동애 대표는 중국 근현대사가 전공 분야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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