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수 년째 동굴 탐사를 다니고 있다. 관광동굴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미개방된 자연 동굴들을 지자체의 허가를 얻어 들어간다. 동굴생물학이나 동굴지질학 연구자들의 학술 탐사를 따라다니는 아마추어 연구보조원 신분으로.
동굴에 왜 가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주 탐사를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대신하는 것이라 답한다. 동굴 깊숙이 들어가 외부의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불을 끄고 앉아 있으면 완벽한 어둠을 경험할 수 있다. 글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피치 블랙(pitch black)이다. 눈을 감으나 뜨나 시야는 아무런 차이 없이 깜깜할 뿐이다. 그렇게 앉아서 상상한다. 여기는 지금 지구가 아니라 어느 낯선 행성의 땅속 동굴이라고.
정지용 시인은 말했다.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가 /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 이젠 다 자랐소.’
내가 본 것은 별똥이 아니라 중학생 시절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에서 본 어떤 외계 행성의 얼음 동굴이었다. 얼음 동굴 안에서 내다보이는 밤하늘에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커다랗게 반짝이는 상상도였다. 우리말로 좀생이별이라고 하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겨울밤이면 맨눈으로도 잘 보이는 별무리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플레이아데스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서울의 공기가 흐려져서인지 사는 게 바빠서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먹고 살피면 금세 찾을 수 있는 것을.
‘코스모스’에 실린 그 상상도에 플레이아데스는 무척이나 크게 그려져 있었다. 그 별무리는 지구에서 440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니 아마 그 얼음 동굴이 있는 외계 행성도 비슷하게 멀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생전에 직접 가볼 길은 요원한 셈이다. 그러니 지구의 동굴 속에라도 들어가서 상상이나 할 수밖에.
사실 동굴은 실제로 우주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동굴 속에는 빛이 없기 때문에 광합성이 불가능해서 식물이 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생태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굴에 갈 때마다 신기한 장면 중 하나가 손바닥만하게 고인 물에도 새우가 산다는 것이다. 색깔이나 크기가 손톱 반달하고 흡사한 동굴옆새우류는 우리나라 동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진동굴성 생물이다. 이 밖에도 동굴 안에는 작디작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주생물학 연구자에게는 동굴생태계가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빛도 없는 극한 환경에서 그 동물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아가는 걸까?
일단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먹이가 된다. 물론 사체도 깨끗이 먹어치운다. 박쥐의 경우 먹이 활동은 대개 밖에서 하지만 배설은 동굴 안에 하는데, 이들의 배설물이 쌓인 구아노도 좋은 식량이 된다. 이 밖에 빗물을 타고 들어온 미세 유기물 조각들도 동굴 생물들의 주요 먹이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공급은 늘 불안정하기에 동굴 생물들은 엄청난 생존력을 발달시켰다. 눈이 퇴화된 대신 다른 감각은 매우 발달했고, 몇 달씩 굶어도 끄떡없는 경우도 있다.
최근 관측된 바에 따르면 달에도 동굴이 있다. 미래에 달 식민지가 건설된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지가 바로 동굴 속이다. 달은 지구와 달리 강력한 자기장이나 대기가 없어서 치명적인 우주방사선이 그대로 내리쬐는데, 이를 피하려면 두꺼운 차폐막을 둘러야 한다. 그런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달의 지하로 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내 생전에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커다랗게 보이는 외계 행성의 얼음 동굴에는 가볼 수 없겠지만, 달의 동굴이라면 혹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 지구의 동굴 속에서 거뜬히 살아가는 동물들처럼 미래에는 우리 인간들도 달이라는 극한 환경의 동굴 속에서 씩씩하게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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