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동건(39)이 스크린 밖으로 나와 무대에 서기로 했을 때 관객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매년 2편 이상의 드라마, 영화에 출연하는 주연급 스타가 연극도 아닌 뮤지컬에 뛰어들다니. 수십 년 배우 경력이 있기에 연기력에 대한 신뢰는 있었지만 방송ㆍ영화와는 전혀 다른 무대를 잘 소화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지난 6일 뮤지컬 ‘보디가드’ 속 프랭크 파머 역으로 처음 등장한 이동건은 일각의 걱정을 단숨에 누그러뜨렸다. 음치 설정으로 넘버를 유창하게 부르는 장면은 없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으며 극을 노련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공연에 한창인 지난 1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이동건은 “공연이 끝난 뒤 들려오는 박수와 함성 소리에 상상 이상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보디가드’에서 이동건은 슈퍼스타 레이첼 마론을 지키는 경호원 역을 맡았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고, 강인하지만 주변을 품을 줄 아는 캐릭터다.
이동건이 뮤지컬 데뷔를 떠올린 건 예상 밖의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번 아웃. “제가 1년에 드라마 두 작품씩 3, 4년을 해봤는데 굉장히 소모되더라고요. 문득 이런 걱정도 됐어요, 1년에 네 달 정도를 TV에서 저를 보는 시청자들도 지치지 않으실까. 그래서 조금 새롭게 무대 위의 이동건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데뷔 21년된 배우 이동건에게도 무대는 꽤나 두려운 공간이다. 베테랑 뮤지컬 배우들과 쉴 새 없이 호흡을 맞추고, 상영시간 2시간 동안 빈틈이 생기지 않게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건은 “객석에서 공연을 10번 정도 봤는데 움직임이나 연기가 음향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을 때 얼마나 김이 새는지 느끼게 되더라”며 “3번째 공연 때까지 실수가 없어서 그 뒤로 마음을 놨더니 실수들이 많이 생겼고, 너무 긴장을 놓지 않아야겠다는 태도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건이 극 중에서 가장 공들이고 있는 장면은 단연 마론과의 첫 데이트 날. 여기에서 파머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마론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눈을 맞춘다. 음악 앨범까지 낸 이동건에게 음치 역은 되레 간지러울 것 같다. 그는 “사실 초반에 노래를 너무 잘한다고 2, 3번 지적을 받았다”며 웃었다. “그런 지적을 받아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박치 컨셉까지 추가해봤죠. 그랬더니 ‘이번엔 너무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박치 컨셉을 빼고 작전을 다시 짜고 있어요.”
연기 생활에 활력을 되찾은 것 외에도 뮤지컬이 이동건의 삶에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육아다. 이동건은 배우 조윤희와 2017년 결혼해 그 해 딸을 얻었다. 드라마 촬영 땐 3, 4일에 한번 보면 다행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엄마만큼이나 아빠를 찾는단다. 이동건은 “한번은 윤희씨가 자다 깨서 아이에게 갔는데 ‘아빠!’라고 불렀다고 한다”며 행복해했다.

이동건은 예상보다 뮤지컬에 더 큰 포부를 갖고 있다. 다음 행보를 묻는 질문에 “’보디가드’ 세번째 공연(2016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할 정도다. 이동건은 “많으면 1년에 한 작품 정도는 무대에서 해보고 싶다”며 “그게 ‘보디가드’를 시작하게 된 이유”라고 강조했다. ‘보디가드’는 내년 2월 23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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