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 “테일러 대사대행, ‘1월 1일 사임하라’ 지시 받아”
테일러 “폼페이오가 나와 함께 사진 찍히길 바라지 않은 듯”
폼페이오, 내년 상원의원 출마 앞두고 ‘이미지 메이킹’ 나서나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불리한 증언을 쏟아낸 윌리엄 테일러 주우크라이나 미국대사 대행이 내년 초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노골적인 압박 때문이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이 ‘반(反)트럼프 인사’로 낙인찍힌 테일러 대사 대행에게 자신의 우크라이나 방문 이전에 물러나라며 날짜까지 특정했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뒤끝’으로 보이지만, 내년 상원의원 출마를 저울질하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18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폼페이오 장관이 테일러 대사 대행의 사임을 종용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테일러 대사 대행이 “올해 6월 시작된 대행으로서의 임기가 끝나 내년 1월 초 사임하려고 한다”고 밝힌 것이 실제로는 폼페이오 장관에 의한 경질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6월 18일 자리에 오른 테일러 대사 대행은 미 연방결원개혁법(FVA) 규정에 따라 2020년 1월 8일 임기가 종료되지만, 그보다 일주일 앞선 1월 1월 사임한 뒤 이튿날 우크라이나에서 출국할 예정이다.
WSJ는 ‘일주일’의 간극이 폼페이오 장관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아직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으나 폼페이오 장관은 내년 1월 3~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예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테일러 대사 대행이 임기를 예정대로 마칠 경우 폼페이오 장관으로선 어떤 식으로든 그와 만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WSJ는 한 미국 관리를 인용해 “폼페이오 장관의 수석보좌관인 울리히 브레히뵐이 지난 11일 테일러에게 ‘1월 1일 대사 대행직을 그만두라고 장관이 지시했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테일러 대사 대행은 이를 ‘폼페이오 장관이 나와 만나거나 함께 사진 찍히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이해했다고 이 관리는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한 관리도 “테일러는 폼페이오가 키예프에 도착하기 전에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테일러 대사 대행의 사임 날짜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였던 셈이다.
이는 결국 폼페이오 장관의 캔사스주 상원의원 출마설이 나오는 ‘민감한 시점’과 관련돼 있어 보인다. 테일러 대사 대행은 지난 10~11월 의회의 탄핵조사 청문회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조사를 약속할 때까지 미국의 군사 원조가 없을 것임을 우크라이나가 이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보다 바이든 수사에 더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등의 증언을 쏟아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트럼프 반대파’로 지칭하며 “인간 쓰레기”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인사인 폼페이오 장관으로선 테일러 대사 대행과 함께 있는 장면이 노출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겼을 거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