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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는 개처럼 울었다”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먹은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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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는 개처럼 울었다”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먹은 여자들

입력
2019.12.20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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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왼쪽)와 연인 에바 브라운이 식사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돌프 히틀러(왼쪽)와 연인 에바 브라운이 식사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절대 권력자들은 늘 ‘독살’을 두려워했다. 기원전 54년 로마제국의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버섯 요리를 먹고 독살당했고,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두다리 황후는 남편 찬드라굽타의 음식을 대신 먹고 죽었다. 20세기에도 여전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는 1978년 영국 버킹엄 궁을 국빈 방문했을 때 검식관을 대동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역시 여러 명의 개인 검식관을 두고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검식관을 채용한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아돌프 히틀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장편소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바로 이 히틀러의 검식관을 소재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감별하기 위해 끌려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15명의 여성 중 유일한 생존자인 마고 뵐크의 인터뷰를 토대로 썼다. 뵐크는 70여년의 침묵을 깨고 지난 2014년 95세의 나이로 독일 언론에 출연해 당시의 끔찍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작가 로셀라 포스토리노는 신문을 통해 뵐크의 이야기를 접한 뒤, 살기 위해 매일 죽음의 위협을 감내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마고 뵐크가 1939년 즈음에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고 뵐크가 1939년 즈음에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AP 연합뉴스

소설은 구체적 시기와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뵐크의 증언을 뼈대로 했다. 스물 여섯 살의 로자는 1943년 남편이 2차대전으로 징집되면서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와 시부모와 함께 지낸다. 어느 날 로자는 영문도 모른 채 나치 친위대에게 붙잡혀 히틀러의 동부전선 본부가 들어선 인근 병영으로 끌려간다. 이곳에서 로자는 함께 끌려온 열 명의 여성들과 함께 히틀러가 먹게 될 음식을 미리 먹는 ‘시식가’이자 ‘독 감별사’ 역할을 하게 된다.

매일 세 번, 죽음의 공포와 마주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매번 식사 후에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개처럼 울기도 했으나, 이런 와중에도 츠비바크(독일식 러스크 과자)는 향긋하고 달콤했다. 시식을 위해 병영에 모인 여성들의 입장도 제각기 다르다. 히틀러가 먹게 될 음식을 미리 맛보는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광신도들이 있는가 하면, 추근대는 친위대원들의 관심을 즐기는 여성도 있다.

마고 뵐크는 평생 히틀러의 시식가였던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가, 95번째 생일을 맞고 며칠 뒤 진실을 밝혔다. AP 연합뉴스
마고 뵐크는 평생 히틀러의 시식가였던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가, 95번째 생일을 맞고 며칠 뒤 진실을 밝혔다. AP 연합뉴스

미혼이거나 과부인 다른 여성들과 달리, 전장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로자에게 독이 든 음식을 먹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피해가야만 하는 불운이다. 그러나 상황은 복잡하게 가혹해서, 정작 남편이 전장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에 차라리 독이 들어 있기를 바라는 로자에게 음식은 결코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칼로 자르듯 입장을 정하거나 어느 한쪽을 택할 수 없는 것은 나치 체제 하의 모든 인물과 상황에 적용된다.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해도 히틀러의 죽음을 막는 역할을 맡은 로자는 체제에 기여한 동조자다. 그러나 동시에 히틀러로 인해 끊임없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는 희생양이기도 하다. 비록 독이 들어있을지 모르지만, 그 위험만 넘긴다면 모두가 배를 곯는 전쟁 상황 중에도 매일 진수성찬을 누릴 수도 있다. 게다가 이들 시식가들의 급여는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보다 높았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ㆍ김지우 옮김 

 문예출판사 발행ㆍ424쪽ㆍ1만4,800원 

뿐만 아니라 로자는 유대인 동료의 죽음을 막지 못한 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시식가들을 감시하는 친위대의 장교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의 도움으로 시식가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기까지 한다. “나는 고작해야 내가 씹어 삼키는 음식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는 무해한 행위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되뇌지만, 나치 체제하에서 ‘살아남았다’라는 죄책감은 로자를 마지막 순간까지 괴롭혔다.

실제로 마고 뵐크는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가 사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불행했다. 검식관으로 일하던 다른 여성들이 소련군에 체포돼 총살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지만, 소련군에게 감금당한 채 14일간 강간 당했고 그 충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됐다. 기적적으로 귀환한 남편과 재회했지만 악몽을 떨쳐내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다. 뵐크는 이렇게 증언했다. “100세를 앞둔 지금까지도 그 14일간 밤낮의 악몽을 꾸고 있다.” 전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비롭지 않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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