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임원의 연봉 상한선을 제한해 사회적 임금격차를 줄이자는 이른바 ‘살찐 고양이 조례(서울시 공공기관 최고임금에 관한 조례안)’가 서울에서는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의회 상임위에서 논의 자체가 재차 보류되면서 이번 회기 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과 정의당 서울시당은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기, 부산 등에서는 이미 살찐 고양이 조례가 통과됐는데 서울시는 이미 늦었다”며 “이제는 박원순 시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이 조례가 지난 8월에 이어 이달 17일 시의회 소관 상임위인 기획경제위원회에서 또다시 보류된 데 따른 것이다.
이 조례안은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임원의 보수를 최저임금의 6배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가운데 공공기관부터 임원과 일반 노동자간 격차를 줄여보자는 취지다. 조례대로 적용된다면 공공기관장의 연봉은 올해 최저임금 8,350원을 적용한 월 환산액(174만5,150원)에 12개월을 곱한 총액의 6배인 1억2,565만원 이내로 묶인다. 현재 그 이상을 받고 있는 서울연구원, 서울기술연구원, 서울교통공사 등 14개 기관장 연봉을 깎아야 한다.
이에 서울시와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이 압도적 다수인 시의회 집행부는 마뜩잖은 분위기다. 해당 조례안이 시장의 예산 편성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데다, 다른 분야 수준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많지 않다거나, 적은 연봉으로는 경쟁력 있는 임원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논리도 시의회 안팎에서 언급된다.
하지만 권 의원은 “서울시에는 공공기관장 급여를 어떻게 줘야 할지 일정한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서울시 투자ㆍ출연기관장 연봉을 살펴보면 박 시장의 최측근인 서왕진 서울연구원장이 가장 많은 2억479만원을 받아, 가장 연봉이 적은 120다산콜재단 이사장(1억500만원)과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권 의원 측은 최저임금의 6배가 과도하면 7배(부산ㆍ경기)나 8배까지 상한액을 올리거나 현재 조례상 연봉 기준에서 성과급을 제외하자는 절충안을 내놨다. 그러나 당장 20일 끝나는 이번 회기엔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동영 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고액연봉을 받는 시 산하 공공기관장 등 이해당사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거나 박 시장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앞서 공공기관 임원 연봉뿐 아니라 민간기업 최고경영자 연봉도 최저 임금의 각각 10배, 30배로 제한하는 최고임금법이 2016년 발의된 바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이 4년째 국회에서 발이 묶이면서 지방정부 차원의 ‘살찐 고양이 조례’가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미 지난 5월 부산을 시작으로 경기, 울산, 경남, 전북에서도 관련 조례가 통과됐다.
권 의원은 “노동존중과 소득불평등 해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회적 과제”라며 “박 시장은 말로만 불평등 해소를 해결하겠다고 하지 말고 당장 액션을 취해달라”고 호소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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