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생명답게 대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입에 대 감전시키는 방법으로 개를 도살한 개농장주가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동물보호단체도 “기념할 만한 판결”이라며 환영 입장을 내놓았다.
19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란 범행이 경미한 범인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재판부는 ‘누구든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동물보호법에 비추어 볼 때, 이씨의 도살 방법은 ‘잔인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자신의 개농장 도축시설에서 전기 쇠꼬챙이를 개의 입에 대 감전시키는 방법으로 개를 도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선 1심은 “동물보호법에 규정된 ‘잔인한 방법’에서 ‘잔인’의 개념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할 경우 처벌 범위가 무한정 확장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관련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그 업계 종사자가 쉽게 알 수 있는 ‘잔인하지 않은 도축방법’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씨를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개의 특성을 고려할 때 도살 방법을 엄격히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동물자유연대, 동물행동권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도 재판부 결정을 환영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많은 시민들과 단체들의 노력, 그리고 사법부의 합리적 판단이 오늘의 판결을 이끌었으며 ‘자신이 소유한 동물은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법원을 판단을 바로잡는 시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며, 생명을 생명답게 대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며 “우리는 오늘의 판결을 길이 기념하며, 고통 속에 살다 고통 속에 죽어간, 또 현재도 그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을 위해 시민과 함께 멈추지 않는 걸음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