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지만 대단한 착각이다. 현대 문명을 태동시킨 신석기 혁명 때부터 인간 옆엔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맹군이 있었다. 그들 덕에 인류는 사냥에 성공하고, 농사를 짓고, 초원과 대륙도 건널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 곁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개 말 소 닭 등의 이야기다.
야생을 떠돌던 이 동물들이 처음부터 인간에 협력했던 건 아니다. 각자 최적의 생존 환경을 찾다가 자연스레 가까워졌을 뿐. 영국의 저명한 생물인류학자인 앨리스 로버츠 버밍엄대 교수는 이를 ‘길들임’이란 말로 정의한다.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는 인류에 의해 길들여진 동식물 10종(種)이 어떻게 인류와 협력하며 살아 남았는지, 길들임의 기원과 경로를 추적한 책이다. 고고학과 유전학, 지질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이 쉴새 없이 펼쳐진다.
보통 작물화, 가축화는 인류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은 어느 한 종만 이득을 얻거나, 손해를 보는 협력은 없었다고 말한다. 동맹의 시작이 어떻든지 간에, 각 동맹은 공생관계로 진화하며 발전해왔다는 것. 길들임이란 말이 어색하다면 상호 작용으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개로 진화한 늑대는 자발적으로 길들임을 택했다. 배고픈 늑대들은 인간이 사냥한 고기를 얻어 먹기 위해 인간 무리에 먼저 접근했다는 게 저자의 추론이다. 인간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늑대들과 제휴를 맺었다. 인간은 늑대와 함께 사냥해 온 먹이를 나눴고 늑대들은 포식자로부터 인간을 지켰다.
그렇게 인간의 친구가 된 늑대는 점차 가축화된 개로 변해 갔다. 인간과 같이 살면서 육식에서 잡식으로 식성도 바뀌었고, 공격성은 사라지고 온순함만 남았다. ‘늑대의 본성’을 잃어버린 대신 개가 얻은 건 ‘종의 번성’이었다. 현재 지구상에 생존하는 늑대는 30만마리에 불과하지만, 개는 5억마리가 넘는다.
소는 인류가 먼저 나서서 길들인 경우다. 인간은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소가 성숙하기도 전에 도축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소는 더 작아지고 가벼워졌다. 소의 조상인 오록스는 몸길이 3m, 몸무게 1,000㎏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지만, 지금의 소는 오록스보다 33%나 작아졌다.
동물을 길들임으로 생긴 변화는 인간에게도 찾아왔다. 젖당 소화 능력이 사라졌던 인간이 소를 키우면서부터 우유를 마시기 위해 젖당 내성 유전자를 생산하게 됐다. 인간은 길들임의 주체이면서도 객체였다. 저자는 이 같은 사례를 닭, 말, 밀, 옥수수, 쌀, 사과, 감자 등 여러 다른 종에도 적용해 설명하며 길들임은 쌍방의 과정이란 점을 역설한다.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앨리스 로버츠 지음ㆍ김명주 옮김
푸른숲 발행ㆍ588쪽ㆍ2만5,000원
저자는 길들임의 대상 10종을 차례로 언급하는데, 제일 마지막은 인류 자신이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종과 어울려 살아 가기 위해 스스로를 길들여왔다는 주장도 펼친다. 현대인이 원시 인류에 비해 전반적으로 외모가 부드러워지고 공격성이 감소한 것은, 생존과 번성을 위해 스스로를 길들여나가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래야 다른 종으로부터 공격받을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 남기 위해 상호 의존하며 협력해왔다는 것.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길들여지지 않은 종에 대한 공존을 주문한다. 자연에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종보다, 길들여지지 않은 종이 훨씬 더 많다. 또 길들여진 종들은 자신의 뿌리인 야생의 세계와도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인간이 점령한 현재의 지구 생태계는 야생과의 공존은 잊은 듯하다.
저자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종의 다양성을 지키며, 균형을 맞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한다. “인간과 기꺼이 친구가 돼 준 협력자들이 없었다면 인간의 역사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을 잘 가꿔 나가지 못한다면 인간의 미래는 없다.” 인간은 최고의 종이 아니라 하나의 종일 뿐임을 잊지 말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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