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생결합펀드(DLF)와 키코(KIKO) 불완전판매를 둘러싼 분쟁조정 뉴스를 보면서 이모(72)씨는 10여년 전 일이 떠올라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은행에 갔다가 직원 권유로 덜컥 고위험 투자상품에 가입하고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는 투자 피해자들의 사정이 자신의 가족이 겪었던 일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19일 기자가 만난 이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씨의 아내와 처형은 2007년 서울 서초동에 있는 A은행 영업점에 정기예금을 들러 갔다가, 부지점장으로부터 “금리가 낮은데 요새 누가 예금에 가입하느냐”며 투자상품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가입한 것은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였습니다. 2008년까지 이씨 아내는 본인과 아들의 명의로 각각 1,500만원(1계좌), 1억2,500만원(5계좌)을 투자했고, 처형도 1억원어치(4계좌)를 가입했습니다.
이들이 가입한 상품은 주가 변동에 따라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는 구조였지만, 당시 은행 직원들은 예정에도 없이 덜컥 펀드에 투자하게 된 두 중장년 여성에게 위험성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펀드약정서나 투자설명서, 표준약관 등 그 어떤 관련 서류도 받지 못한 채 두 사람은 펀드 가입 통장 하나만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씨 가족이 해외펀드와 함께 체결한 선물환거래 계약이었습니다. 해외펀드는 달러나 유로화 등 외화로 대금이 결제되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회피(헤지ㆍHedge)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펀드 만기에 맞춰 특정 환율로 은행과 외화를 사고팔 수 있게 약정을 맺은 것입니다. 당시 이씨 가족이 체결한 선물환 거래는 달러당 800원대 수준.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환율이 1년 만에 2배 가까이 폭등했고, 이씨 가족은 약정에 따라 그 차액만큼을 은행에 물어줘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씨 아들은 약 8,000만원, 처형은 7,000만원, 아내는 570만원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씨는 은행에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며 투자 원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은행은 이씨 가족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내며 버텼습니다. 2010년 2심까지 다툰 결과 재판부는 “일반투자자에 불과한 고객에게 선물환계약을 권유하면서도 환율 상승 시 어떤 손실이 발생하는지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고객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며 은행 측에 손실액의 20~4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씨는 “소송과 별개로 은행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씨는 문제의 서초동 지점에서만 1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전국의 해당 은행 지점에서 같은 상품이 같은 방식으로 팔렸다면 피해 규모가 적지 않을 거란 겁니다.
환율 급등으로 수출기업들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힌 키코 상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2007~08년 일반 투자자들 역시 다른 곳에서 은행 불완전판매의 피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터진 DLF 사태까지, 고객 보호를 등한시하는 금융기관의 오래된 행태로 어두운 역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