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수 만에 싱거운 불계승… “쎈돌 묘수와 전략 통했다” 분석
18일 NHN의 바둑 인공지능(AI) 한돌을 상대로 이세돌(36)의 은퇴 대국이 열린 서울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 대국 시작 약 2시간 20분 만에 이세돌의 불계승이 확정된 순간 화면을 지켜보던 취재진 사이에선 환호성과 함께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세돌은 이날 한돌과 치수고치기 3번기 제1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지난 2016년 3월 구글딥마인드의 '알파고'와 대결에서 1승 4패를 기록하며 ‘인간 최초의 승리’를 거둔 이세돌이 은퇴전 무대로 맞은 AI를 상대로 다시 승리한 순간이다.
호선(맞바둑)으로 맞붙었던 알파고와의 대결과 달리 이날 대국은 이세돌이 2점을 깐 상태에서 덤 7집 반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돌의 우위를 인정하고 이세돌이 바둑 인생 처음으로 핸디캡을 얻고 시작한 것이다.
포석을 마친 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우변에서 첫 번째 승부처가 발생했다. 이세돌은 우변 자신의 돌을 돌보는 대신 상변에 집을 마련했고 한돌은 우변 흑돌을 둘러싸고 공격에 들어갔다. 이세돌의 흑돌이 죽거나, 살더라도 큰 손해를 본다면 단숨에 한돌의 승리로 끝날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대국 상황을 설명한 김만수 8단이 “이세돌이 대위기를 맞았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의외의 반전을 맞았다. 한돌이 흑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웬만큼 바둑 두는 일반인들도 하지 않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세돌이 78수로 흑을 공격하던 백 3점에 역습을 가하자 한돌은 자신의 돌이 잡히는 ‘장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하던 요석 3점이 제압당한 것. 김 8단은 “어? 한돌이 망했어요”라며 당황했고, 실제 한돌은 의미 없는 수를 몇 번 두더니 돌을 던졌다.
이세돌도 AI를 이긴 기쁨보다는 허무함이 컸다. 그는 대국 후 “준비를 많이 한 은퇴 경기였는데 좀 당황스러웠다”면서 “지금 이기고 기분이 좋아야 되는 것인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한돌이 생각을 못했다는 게 상당히 의외였다. (78수는) 프로라면 누구에게나 거의 당연한 수였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알파고와 4국에서도 회심의 78수로 승리한 바 있다. 이세돌은 “2국과 3국에서는 한돌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이런 것은 원치 않는다”고 거듭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돌은 NHN이 2017년 12월 선보인 바둑 AI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프로기사의 실력을 뛰어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알려졌다. 실제 올해 1월만 해도 신민준 9단, 이동훈 9단, 김지석 9단, 박정환 9단, 신진서 9단과의 릴레이 대국인 '프로기사 TOP5 vs 한돌 빅매치'를 펼쳐 전승을 거둔 전력도 있다. 그러나 이날 ‘버그’에 가까운 실수로 패하자 한돌 관계자들의 얼굴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한편 김 8단은 “이세돌의 묘수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세돌이 전략을 잘 짜고 나왔다”고 단순히 한돌의 오류로 인한 승리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세돌은 원래 공격적인데, 오늘은 수비적으로 나왔다. 집을 많이 가져가면서, 한돌의 공격을 묘수로 뚫었다. 그래서 한돌이 당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치수 고치기 3번기 첫판에서 승리한 이세돌은 19일 열리는 제2국에서는 핸디캡 없이 한돌과 호선으로 대결한다. 이세돌은 제1국 승리로 기본 대국료 1억5,000만원과 승리 수당 5,000만원 등 2억원의 상금을 가져갔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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