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열린 홍콩-중국 ‘이 시국 매치’
‘정치적 문구’ 압수 물품 10개
숨겨온 유니폼 화장실서 갈아입기도
경기 내내 “프리 홍콩” 외쳤지만
중국의 2-0 승리로 끝나
홍콩과 중국의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전 3차전이 열린 18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두 팀은 나란히 2패를 기록,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다른 이유로 관심을 모았다.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 홍콩에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진행되면서 치열한 국가간 대립이 축구 경기장에서도 이어지게 된 것이다. 국내 축구 팬들도 ‘이 시국 매치’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날 대회 주최측과 대한축구협회도 만일의 사태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경찰 기동대를 기존 80명에서 240명으로 확대 배치했고, 사설 경호원 역시 640명을 배치했다.
이날 100여명에 가까운 홍콩 팬들의 경기장을 찾았는데, 입장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홍콩 응원석인 북쪽 출입구에서 입장하려는 홍콩 팬들과 소지품을 확인하려는 보안 요원 및 자원봉사자들의 실랑이로 북새통이 벌어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경기장 내 정치적 구호는 금지다. 대회 주최측은 중국어와 광둥어 가능 자원봉사자를 배치, 홍콩 팬들의 옷과 플래카드, 피켓 등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두꺼운 외투 안의 반팔 옷의 문구를 확인하려는 자원봉사자의 요구에 홍콩 팬들이 야유하는 상황까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홍콩팬은 “우리는 정치적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오지 않았다”며 “그런데 여성들까지 안에 입은 옷을 확인하는 건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분노했다.
하지만 검사 과정에서 일부 정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적발되기도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정치 문구를 이유로 압수된 물품은 티셔츠 등 10개다. 보안요원들도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10여분이 지나서야 모든 홍콩 팬들이 경기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중국 관중이 더 많을 거란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관중석 분위기는 홍콩의 압승이다. 홍콩 팬들은 중국의 국가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야유 세례를 퍼부었다. 이들은 저항의 표시로 아예 뒤돌아 서기도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홍콩 팬들은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며 “위 아 홍콩!(We are HongKong!)”을 끊임없이 외쳤다. 중국 응원단은 2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몰래 숨겨 가지고 들어온 유니폼을 갈아입는 팬들도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조명을 이용해 중국 선수들의 프리킥을 방해하고, ‘프리 홍콩(Free Hongkong)’을 외치다 관계자의 저지 당하기도 했다.
응원전은 홍콩이 압도했지만 경기에선 중국이 이겼다. 중국은 전반 8분 터진 지샹의 선제골과 후반 26분 나온 장시저의 페널티 킥으로 쐐기골로 뽑아내며 2-0 승리를 거뒀다.
부산=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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