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새 시집 ‘너의 거기는…’
“황현산ㆍ허수경 유고집을 낸 후
방전된 내가 살려고 낸 시집이죠”
“사실 제가 살려고 낸 시집이에요.”
최근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란 시집을 낸 김민정(44) 시인의 말이다. 너스레 떨듯 툭 던진 한마디지만, 사실 이 말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지난해 문학계는 유독 눈물 지을 일이 많았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황현산부터 시인 허수경에다 소설가 최인훈까지 세상을 등졌다. 떠나는 이들을 가장 앞서서 배웅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가장 마지막까지 위로한 사람이 김민정이었다.
그래서 김민정의 올해 주된 작업은 ‘유고’였다. 1주기를 맞아 황현산 유고집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잘 표현된 불행’을 냈다. 허수경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도 냈다.
할 도리를 다하고 나니 ‘방전된 나 자신’이 보였다. 가만 있다가도 불쑥 눈물이 솟았다. 내 안의 뭔가를 한 번쯤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김혜순 시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 10월 문학동네 100호 특집에다 쓴 글을 보고는 “지금 몸에 시가 붙어 있어, 받아 적으면 다 시야”라고 했다.
지금이다 싶었다. 11월 16일부터 3일동안 책상에만 붙어 앉아 먹고 자면서 써 내려갔다. 안 그래도 허수경 시인 유언 중 ‘계속 시 쓰라’던 말만큼은 지키지 못해 괴롭던 차였다. 뭔가 쓰기 시작하자 시는 계속 나왔다. 그렇게 쓴 44편을 묶어 시집으로 만들었다. “쓰다 보니 태어났을 때부터 마흔네 살 먹은 지금까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정리되더라고요. 지금껏 몸이 부서져라 일만 했는데.”
시 한 편마다 ‘곡두’라는 부제를 달아 뒀다. 사람이나 사물이 있는 듯 보이다 일순간 사라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우리말이다. 시에는 황현산, 허수경을 비롯, 우리 곁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다가 이내 사라져 버린 것들이 등장한다.
“사실 ‘곡두’라는 말 자체가 시라고 생각해요. 사람도, 시도, 그 무엇도 곡두라고 해 둬야 완전히 놓은 게 아니라 다시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시집 제목도 ‘헤어졌습니다’가 아니라 ‘헤어지는 중입니다’라고 지었다. 여지를 남겨 두는 게 문학이자, 삶이기도 하다.
김민정이 ‘시인’ 이름으로 낸 책은 네 권. 하지만 ‘편집자’ 이름으로 낸 건 500권이 넘는다. 글 쓰는 사람 뒤치다꺼리를 하다 ‘당돌한 젊은 시인’은 ‘등단 20년 중견 문인’이 됐다. 좀 서러울 법도 한데 여전히 “‘남의 시집’ 낼 생각에 ‘내 시집’은 후다닥 마무리” 한단다.
“나한테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이 잘되는 걸 보면 행복해 죽을 것 같아요. 20년쯤 하니까 알겠어요. 누구를 품고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는지. 제 꿈은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품는 거예요. 그게 나를 살게 해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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